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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식()   2003-12-28  
  [초가지붕위에 달 오르듯]



초가지붕위에 달 오르듯
-『월화차문화원』의 제10회<한국전통문화의 밤>을 보고-
손 인식(서화가)

달빛이었다

月華! 달빛이었다. 『월화차문화원(月華茶文化院』에서 제10회로 개최한 <한국전통문화의 밤>은 그냥 달빛이었다. 눈을 감고 느끼니 초가지붕 용마루 너머로 두어 아름 뻗으면 잡힐 듯이 걸리던 달빛이었고, 눈을 뜨고 바라보니 야자닢 하늘거림을 너그럽게 안고 솟구친 적도의 달빛이었다.

다름 아닌 적도 언저리의 만물을 어르기 위해 내리는 에너지로서의 달빛이었다. 혹여 미물이나 여린 새싹하나가 완충의 여지없이 쏟아져 내린 햇빛에 지쳤을까 싶어 안타깝게 비추는 달빛, 더러 무더기로 내리는 스콜자락에 웃자란 생명들이 버거울까봐 정으로 내리는 달빛, 그런 달빛이었다.

주기적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지구의 위성 달, 재생과 부활이라는 참 생명의 의미를 지닌 달, 그리하여 달은 하필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비추든가?! 냉정한 듯 처연한 듯 그 신비스러운 빛이, 한국인 특히 한국여인의 전통적인 정서와 감수성을 상징한다고 누군가 말했었지. 그래서 “봄 가을 업시 밤마다 돋는 달도/「예전엔 미처 몰낫서요」”처럼 시인 소월만 읊게 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마음으로 바라보고 읊어야 하는 달, 그 달이 아니던가.

소리 없이 쌓이는 함박눈처럼

2003년 12월 3일 자카르타의 밤! 12월의 그 밤, 고국의 깊은 산 어디쯤에선 시한(時寒)을 재우려는 하얀 눈 소리 없이 내려, 목이 긴 솔가지 휘이도록 쌓였을 란지. 그러므로 나는 말하지 않을란다. 기품 있는 우리 전통문화의 소박함과 은은함이 그랜멜리아 호텔의 카펫위에 켜켜이 쌓이던 그 밤을 그냥 덮어둘란다.

매력적 목소리로 인해 전달하려는 내용의 의미가 배가되던 월화차회회장의 <인사말>을 여기에 옮기겠는가,『월화차문화원』의 만만찮은 십년의 <연혁>을 다시 반복하겠는가. 차의 맛과 색, 향을 <내방다법(內房茶法) 경연>으로 재현한, 찻잎에 내린 정갈한 달빛 같던 그 정경을 굳이 글로 옮기겠는가. 쓴들 어찌 다 말로 글로 새길 수 있으랴.

유아들의 앙증맞음으로 <현대 생활 차법>, 초등부의 의젓함으로 <조선시대 풍류 차법>, 중등부의 튼튼함으로 <고려 차법>을 전하던 그 모습을 가슴에만 두리라. 찻잎을 키웠던 새벽이슬의 영롱함이 이미 그들의 것임을 보았고, 그들이 지닌 희망이 알알이 차향으로 피어올랐을 터이니 그들의 <행다(行茶)시범>을 그냥 이 글의 행간에 묻어 두겠다는 의미다.
기모노의 일본인, 파란 눈의 서구인들의 가슴과 뇌리에 소담히 벙글었을 한국의 달을 다시 꺼내올 수 없음이 아닌가.

하여 1부의 행사가 끝난 다음 월화차회가 내어준 오손한 <식사>와 도손한 정담을 미루어 둔들 뉘 탓이 있을 것이며, 찬연한 귀태(貴態) 화려한 무세(舞勢)가 한삼 자락에 의해 감아 돌던 궁중풍 <화관무>의 장엄함과, <학춤>의 고고함을, 거기에서 눈과 가슴에 담아둔 사람들끼리만 나누어 가진들 누가 그것을 원망하랴. 추임새가 절로 나오던 <굿거리>의 흥겨움과 결곱게 시어의 운율을 타고 넘던 <시낭송>, 장단이 춤사위를 따라 넘나드는지 춤사위가 장단을 따라 넘나드는지 헤아리는 사이에 박수소리가 퍼뜩 정신을 들게 하던 <산조>는 산조(散調)로 흩어두어야 제격이리라.

여기까지도 잘 참아왔거늘 춤꾼이 제여 곰 신명에 도달해 맺는가 했더니 풀고, 풀었는가 했더니 다시 이어 내던 <살풀이>를 말하겠는가. 슬픔이 깔렸으되 쉼 없이 슬픔을 넘어서서 정과 환희의 울컥거림을 안겨준 살풀이는 오직 느껴야 할 뿐 이야기로 전달해서는 안 되리. 이어진 경연결과에 따른 시상과, 참석자 모두의 합창에 따라 함께 흔들려 하나가 되던 촛불은 다시 전등불을 밝히면서 모두의 입김에 의해 모두에게 간직 되었을 것이니 마지막 순서의 송년사처럼 가슴에 담아 둘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는가.

이젠 말할란다

아! 그래서 이젠 말할란다. 아니 기록할란다. 족히 300여명을 넘긴 참석자들이 아무런 금전적, 명예적인 것 없이도 오히려 맑게 하나 되던 그 아름다운 문화의 위력을 말할란다. 높다란 호텔 천정에 나 보란 듯 걸린 휘황한 조명등을 능가한 한복의 맵시는 차라리 접어두는 것이 좋으리라.

다만 이국의 밤에 화려하게 피어난 민족문화의 꽃다발은 꼭 알려야 하리라. 어찌 맛과 향 덜 우러난 찻잔이 없었으랴. 엇 놓인 버선발이 없었으랴, 가락과 엇나간 춤사위가 없었으랴. 춤사위의 속내가 얼굴 표정에까지 실리기를 어찌 다 바라리. 굳이 프로의 매끈하고 탄력 있는 춤사위를 연상함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인 것을. 그것이면 되었다. 가감 없이 진실한 그 몸짓이면 되었다. 시간과 세월 속에서 분출되었을 땀방울이면 되었다. 그러기에 성숙한 여인이 그 성숙함으로, 더러 중년의 여인이 소녀의 마음으로 살아, 맵시는 여느 젊은 숙녀보다 더 고왔던 한국 여인네들이 넉넉하게 흥으로 풀어내는 삶의 몸짓을 반드시 새기고 가야겠다.

이리 간절하게 새기려는 이유는 또 더 있다. 반주로 깔리던 어느 명창의 구음(口音), 더러 노랫말이 얹어지기도 했었지. 그 구음의 깊음이나, 아마추어 춤꾼이 언 듯 내비친 하얀 속곳 자락의 스침 하나에도 모두 안으로 안으로 다져져 있던, 고귀한 시공(時空)을 모른척 하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한복의 선보다 더 아름다운 섬섬옥수가 서예가인 내게는 여지없이 산조의 운율과 함께 풀려나는 붓 사위로 안겼기에 그렇다. 아니 그리도 하얗게 뿜어나던 춤사위의 행간에, 삶의 고단함과 찌듦이 있으면 무한대로 부려놓고 가라고 직선 곡선으로 암시하면서, 참석자 모두에게 마음 크기보다 더 크게 감성을 안겼다는 확신 때문에 무딘 붓을 들어 감히 되새기려는 것이다.

월화차회! 10년의 세월! 280여명이 몸과 마음을 다지는 요람이었고 아직도 70여명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통해 마음과 몸을 다지고 또 다지는 향기의 생처(生處)이다. 엄마의 월화차회 초행길을 동행하던 유치원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던가. 초등학교 4학년이라며 “안녕하세요”하던 아이는 엄마의 뱃속에서 차맛을 보고 엄마와 함께 춤을 추었다던가. 변화하기보다도 일관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이 사람의 삶이요 요즈음의 환경인가. 하물며 10년의 세월을 한결 같았다니. 더군다나 우리네 문화라곤 찾아보기도 어려워 마음 붙이기 쉽잖은 후덥한 이국이자, 오고 감이 잦은 어쩌면 객주(客酒) 같이 느껴지는 곳 아닌가.

『월화차문화원』의 중심에는 한사코 한사코 당신을 감추고 낮추시는 김명지선생이 계시다. 그 뒤에는 다시 그의 부군이자 동래 출신으로 동래 학춤을 고향처럼 사랑하는 신상석선생이 계시다. 이 두 분이 계시기에 『월화차문화원』이 때로는 국가를 대표해서 우리의 전통 문화를 선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교민과 함께 하면서 10년을 쌓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분은 그 공을 온통 한 사람 한 사람 회원들과 그 회원들을 외조한 명예회원의 것으로 돌린다. 이런 미덕의『월화차문화원』이 있기에, 그 밤 그 자리를 함께 했던 사람들의 가슴 가슴마다에는 한 아름씩 적도의 달빛이 덥석 덥석 안겼을 것이다.

E-mail : soninjae@hanmir.com

한 타임즈 2003년 12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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