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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식 ()   2004-12-30  
  [한글 창제의 철학과 묵은 한지의 가르침으로]

한글 창제의 철학과 묵은 한지의 가르침으로

‘무엇을 표현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보다,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작품을 하는 나에게 있어 늘 당면하는 문제이다. 무엇을 작품의 모티프로 삼든지 표현 방법은 늘 완성된 작품의 생명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 ‧ 인니 수교 31주년과 서울‧자카르타 자매도시 결연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대사관이 마련한 「한국 미술전시회」에 초대된 내가 선택한 주제는 한글(훈민정음)이다. 국가간의 수교를 기념하고 도시간의 결연을 기념하면서 한국의 문화를 알리자는 전시회에 민족의 언어 한글을 테마로 작품을 하는 것은 어쩌면 상식정도의 범주에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을 떠나 마치 예정했던 것처럼 한글을 표현 주제로 선택을 했다. 그리고 매우 흥미롭게 작품에 임했다. 그간 한글을 소재로 작품을 할 때마다, 창제의 철학을 곁들인 인상주의적 표현 방법이 없을까 하고 많은 고민을 했었던 나로서는, 밀쳐두었던 숙제를 명분을 지니고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장이 마련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글은 서예가뿐만 아니라 이미 회화, 조소, 공예 등 여러 부문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모티프로 삼았듯이 표현 대상으로 선택할 만한 특성을 많이 지니고 있다. 특히 창제의 철학적 배경과 자연 현상을 본뜬 가운데 매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원리가 적용된 것 등은, 인상주의적 표현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의 소리나 글자를 단순한 물질적인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이것을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원리가 있음”을 깨달음은, 이미 예술이 지향해야할 본질과 표현의 무한성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제 선택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내가 이번 초대전의 작품에 주로 사용한 100년 이상을 묵은 조선의 한지 때문이다. 한지(韓紙)란 닥나무 껍질을 주 원료로 하여 만든 한민족 고유의 종이를 말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한지의 실물 자료는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후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751년)과 제작년도를 신라 경덕왕 13년(755년)으로 밝히고 있는 백지묵서화엄경(白紙墨書華嚴經)이다.

따라서 이들은 이미 지구상에 현존하는 최고의 지류문화재임이 밝혀졌고, 이에 따라 한지의 내구력 또한 증명이 된 셈이다. 특히 원료나 환경에 대한 문제, 반드시 수공을 거쳐야 함으로 인한 경제성 등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아 정통한지가 현대에 와서 재생산이 거의 불가능함으로, 이를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초대전에 한글과 함께 알리자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어쨌든 한글의 창제 철학과 한지의 특성은, 한 ‧ 인니 수교 31주년과 서울 ‧ 자카르타 자매도시 결연 2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의 문화를 알리기 위한 초대전과 멋지게 어우러진다는 점이 나의 작품외적 생각이다. 이에 나는 한글의 제자원리와 이면의 철학을 요약한 「한글의 개요」와 조선의 「한지의 개요」를 간추려 번역 수록함으로써 민족문화의 특질을 알리는데 다소나마 기여하고자 하였다. 이에 더하여 훈민정음의 제자원리와 이면의 철학을 재해석하는가 하면 각 작품의 특징에 따라 창작 단상을 밝혀 감상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끝으로 이 전시를 위해 힘써 주신 주 인니대한민국대사관 윤해중대사님과 서울시 자카르타시 관계자들, 바쁜 업무 중에도 이 행사를 위해 동분서주 해준 김상술홍보관께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영문 번역을 도운 둘째 아들 기석이와 감수를 해주신 UKI대학 영문과 김용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타국에서의 작품활동에 어려움이 많은 작가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주변의 많은 분들께도 이 지면을 빌어 감사를 드린다.
부디 앞으로도 많은 분들의 가르침과 격려를 바란다.

AUGUST, 2004
인재 손인식 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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