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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식 ()   2006-3-21  
  [뜨거운 편지 20]

빠나스 편지 20

중연, 현당, 연제, 예림, 소해, 목양. 구산, 구은, 화정,
상연, 담산, 다화, 필당, 송하, 청하, 문경, 금석 님께

우리 철없이 삽시다
<사랑하는 글라라! 난 아직 당신의 얼굴에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느낄 때가 있었다면 당신이 사진 속의 당신을 보면서 주름살이 생겼다고, 나이든 티가 난다고 안타까워 할 때입니다. 설사 당신의 얼굴에 주름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당신이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이 아니고 단순히 몸무게가 줄어든 탓입니다.

늘 후덥지근한 인도네시아의 계절 탓인 것입니다. 사실 당신은 서울에 있을 때도 여름이면 늘 몸무게가 줄었었지요. 다행히 한국은 입맛이 돌아오는 가을이 있고, 그래서 통통해서 더욱 보기 아름다운 겨울 여인을 나는 가까이에서 보며 행복해 했었지요.

나는 오늘 기도합니다. 한꺼번에 많이 먹지도 못하고 빨리 먹으면 체하며, 남이 만들어 주어야 그나마 좀 많이 먹는 당신의 그 공주병(?)이 제발 하루 빨리 치유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바랍니다. 나처럼 계속 철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나이 들수록 마음도 비우고 물질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정한 이치인 줄은 당신도 잘 알잖아요?

인도네시아는 일 년 내내 계절의 구분이 미약합니다. 한결같은 분위기의 이 땅, 즉 철이 없는 이 땅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철없이 살아갑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도 주름살이 생긴다는 것도 다 모르는 일로 하고 삽시다. 남보다 돈이 적은 것도 지위가 없는 것도 비교하지 말고 덤덤히 살아갑시다.

우리를 사랑해주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그리워하고 또 우리를 그리워하는 고국의 가족과 친지, 이웃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그 사랑만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철없는 그리움으로만 삽시다.

당신은 80이 되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여인일 것입니다. 당신의 물리적 나이는 내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고 내게 당신의 주름살은 영원히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의 닭살이 돋는 글은 제가 지난 4월 16일 아내에게 쓴 편지의 한 부분입니다. ME(marriage encounter) 조별 모임에서 쓴 편지를 모아 책을 낸다고, 마감이 지났다는 성화에 견디지 못해 ME노트를 뒤적거리다가 고른 편지입니다. 그날의 주제는 "배우자의 얼굴에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나의 느낌은?"이었습니다.

ME 주말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조별 모임이 있을 때마다 썼던 편지들, 주제를 따라 10분간을 쓰고 부부가 서로 바꾸어 살펴본 다음 발표를 하고는 덮어둔 것들인데, 현장을 떠나 다시 읽어보니 참 닭살 돋는 내용들로 노트 곳곳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사실 ME 조별 모임이야 처음 소개시간부터 “제 사랑하는 짝지가 누구인데 요즈음에 유난히 사랑스러웠던 점은 어쩌고저쩌고~~^^”하는 폼이 닭살이 돋는 것이 사실이잖습니까? 그런데 그 닭살 돋는 내용들이 다시 읽어보니 흥미도 있는 것이어서 빠나스 편지의 머리를 장식해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술 더 떠서 오마이뉴스에 실어 한계 없는 망신을 한 번 당해보자 했지요. 마침 전에 언젠가 제가 빠나스 편지에 붙인 저희 성요셉성당 주보에 실었던 글도 있던 터라 그것까지 찾아내어 이야기를 만들어서 올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화당에게 야단맞지 않았느냐고요? 덧붙이는 글에 ME에 대해서 설명을 붙이고 한국ME와 부산ME 사무실의 전화번호까지 실었으니 ME를 다녀온 사람으로서 ME선전을 했으니 뒤늦게나마 할 일을 한 셈이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갔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사이비 애처가가 되었는지...^&^~~

自筆墨緣展이 열립니다
2005년 12월 2~4일, 드디어 열립니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자카르타 시민(?)들의 솜씨들이 전시회를 통해 선보입니다. 아열대의 땡볕 때문일지 ‘문화’란 놈이 삐쩍 말라 비틀어져 겨우 문화라는 말이나 유지하는 척박한 타국의 교민사회에서, 붓 한 자루 들고 온 오기로 모질게 가꾸어 온 열매가 하나 열리는 것입니다.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환경, 문화가 다른 타국, 세계정세와 경제 동향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중에 요즈음 한창 익어가는 망고처럼 파랗고 봉실한 전시회가 열려 자카르타 한인사회에 또 하나의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自筆墨緣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自를 Ja로 보아 자카르타, 또는 원래의 뜻대로 스스로, 자연, ~부터 등 다양하게 해석이 되는데, 뒷 글자들과 함께 해석을 하면 어느 것 하나 별로 어색할 것이 없어서 그리 지었습니다. 특별히 싫다는 말이 없어서 그냥 사용할까 합니다. 글로벌하게 짓자는 말도 있었지만 아는 것이 적어 썩 어울리는 것을 찾아내지 못했고, 이 드넓은 곳에서 성격마저 드러내지 못하면 안 되지 싶어 그리 결정한 것입니다.

전시는 15명 정도가 될 것 같으며 장소는 현 대사관이 있는 건물 옆에 코리아센터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 있는데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있어서 그곳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따라서 이 빠나스 편지를 받으시는 분들 중에서 5~7분의 출품을 바랍니다. 작품은 소품으로 1점씩이면 좋겠고, 한꺼번에 보내주시면 여기서 표구를 해서 걸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이 기간에 시간이 되시면 방문을 해주시면 더욱 빛나겠지요.

시간이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니니 모이시는 김에 바로 결정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11월 10일 쯤에는 작품을 받는 것이 좋을 듯하니 말입니다. 인쇄는 여기서 하더라도 서울에서 편집을 할까하니 이실장에게 작품을 전달해주셔도 좋습니다. 체본이 필요하신 분은 이멜로 제재만 주시면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지요?
또 다시 시월입니다. 고국은 가을! 완연한 가을이라고 이멜이 오고, 여기저기 인터넷 판에서는 가을을 노래하는 글들이 넘치며, 뉴스에서는 산간에 서리가 내릴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처갓집 마당 한 켠에 선 감나무에 풍년이 들었다고 장모님이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무성한 초록, 게으른 초록 위에 새로 돋아난 잎의 연초록이 섞여 있고, 앞집 담벼락의 잠부라는 과일은 얼마 전 익어 따더니 또 열매가 맺어 익어가고 있는 이 기묘한 시월에 참으로 고국의 산하가 그립습니다.

모처럼 모이셨으니 저간의 정을 시월을 바탕으로 버무려 보드라우면서도 촉촉한 열매 많이 맺으실 줄 압니다. 일일이 안부 올리지 못하는 점을 널리 용서하시고, 바쁘신 중에도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10월 13일 새벽 3시 5분
자카르타 슬라딴에서 손인식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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