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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식()   2006-3-21  
  [뜨거운 편지 21]

뜨거운 편지 21

중연, 현당, 연제, 예림, 소해, 목양. 구산, 구은, 화정,
상연, 담산, 다화, 필당, 송하, 청하, 문경, 금석 님께

모두 다 떠났습니다. 기사도 떠나고 가정부도 떠나고 여자도 떠나고 남자도 떠났습니다. 우리 집 아이도 떠나고 이웃집 아이도 떠났습니다. 떠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며칠 전부터 들떠서 허둥허둥 대더니, 가는 데만 2틀이 걸리고 교통비만 해도 한 달 치 봉급보다 더 든다는 길을 무가네로 떠나갔습니다.

덩달아서 한국인들도 많이 떠났습니다. 세계 곳곳을 향해 여행들을 떠났습니다. 성당에서도 신부님, 수녀님을 위시해 여러분들이 성지 순례를 떠났습니다. 저 또한 남들 다 떠나는데 안 떠날 수 없어서 가족과 함께 집을 떠났습니다. 생고기 맛이 아주 쥑여주는 집이 있어 저녁을 먹으로 떠났습니다. 저희들처럼 떠나온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마음으로만 대치동을 향해 떠나고 있습니다.

한 달 전부터 해 뜰 때부터 해 질 무렵까지 낮에는 물 한잔도 마시지 못하는 라마단, 즉 금식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끝나면서 이둘피트리라 해서 이슬람 최고의 명절 르바란이 오늘 3일과 4일입니다. 이때를 맞아 고향을 찾고 부모를 만나며 형제를 보기위해 모두 다 떠나고 또 떠난 것입니다.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남아야 할 것 아니냐? 우리는 어쩌란 말이냐? 돈을 많이 주마, 좀 빨리 올수는 없겠냐? 등 뭔 말로 구슬러도 모두 다 단호히 떨치고 떠나갔습니다. 한 녀석은 밑져 봐야 본전이라는 격으로, 여차로 좀 늦게 가라고 말해놓고는 차비 좀 더 보태주려고 2층에 돈 좀 가지러 올라온 사이에 밖에서 문을 걸어 놓고 가버렸습니다.

이들의 오가는 것이란 좋게 말해 탁발로 떠도는 운수승(雲水僧) 같은 데가 있어서 그럴 때는 돈도 인정도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단칼에 베어버리니 그저 문화려니 하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오는 것도 언제 올 것이니 자기를 필요로 하면 기다리고 아니면 오지 않겠다고 태연하게 말 합니다. 자기들은 아무래도 괜찮으니 주인이 결정하라고 누런 이를 드러내고 천진하게 웃습니다.

가는 것은 좋은데 한꺼번에 떠나버리니 집안도 쾡 하니 그렇거니와 안하든 짓을 하려니 전보다 곱절은 고달픕니다. 벨소리가 들리면 문을 열어주려 황급히 쿵쾅 쿵쾅 달려 내려가야 하고 위아래 앞 뒤 문단속에서부터 청소를 해야 합니다. 이화당은 하지 않던 밥에 설거지에 빨래에 허리가 휠 것입니다. 하여간 일주일은 견뎌야 합니다.

호강에 초치는 소리하지 말라고 하실 것이고 있으면 있는 대로 또 부리느라 속을 썩지만 모두가 누군가를 찾아서 떠나가는 것을 보고 거리는 온통 한가하고 하니 정말 명절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12월 9일부터 하려는 여기의 전시회도 모두들 움직이질 못하는 바람에 작품도 늦게 나오고 해서 저만 바쁘게 움직여야 하게 생겼습니다. 서울의 작품은 그렇게 성의 있게 참여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도 많은 교민들이 긴가민가하고 있는 터라 이번 회원전은 여러모로 전환의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빌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인들 서예협회를 방문했었습니다. 아주 느닷없는 방문도 아니고 전혀 면식도 없는 것이 아니어서 주거니 받거니 휘호도 하고 교분을 나누고 왔습니다. 여전히 말의 장막이 크다는 생각이고,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에서 선뜻 손을 내밀기도 그렇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쨌든 이번 전시 때는 대거 초청을 해볼 생각입니다.

가깝고 먼 머스짓에서 울리는 소리가 상당한 소음입니다. 어제 오후 언젠가부터 울리던 소리입니다. 철야를 하다가 조금 전 새벽 4시에 그쳤습니다. 어제 밤에는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고 머스짓에 예배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로 골목이 시끌벅적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로 이슬람에 대해서 좀 알아보았는데 정말 하느님을 믿는 것이나 성서의 말씀을 믿는 것이 기독교나 가톨릭과 과히 다르지 않는데 왜 그렇게 외적으로는 다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민족성이기도 하고 지도자들의 시각과 욕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여기서도 연일 신문에는 과격파 이슬람들 때문에 전체 이슬람이 피해를 당한다고 하는 기사가 많은가 봅니다.

특히 인도네시아 인들의 특성상 단순한데다가 예컨대 고아나 극빈자들을 모아놓은 학교를 정부가 돌보지 못하는 사이 외국의 과격 이슬람 단체들이 지원함으로써 알카에다의 조직원들이 길러지고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다행히 일부 정부 각료들이 이를 철저히 막아야 한다고 강조들을 하고 있어서 제도적으로 어떻게 대처가 이루어질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처음에 왔을 때 8만 루피아 정도면 자동차를 가득 채우던 기름이 요즈음엔 25만루피아 정도를 넣어야만 가득찹니다. 한국도 그렇듯이 기름 값이 오르니 모든 것이 다 오르고 있습니다. 물가 오르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이렇게 오르는 것을 보면서 대치동 팀의 작품실력이 오르고 있구나를 느낍니다.

중연여사께서는 성당의 봉사에 푹 빠져 계시다구요? 이제까지 봐온 바로 마음 쓰심이 그러하시니 그 후덕으로 주변이 행복, 평안, 건강 하실 것입니다. 현당여사께서는 딸아이 혼인이 궁금합니다. 그때 만화 프로덕션인가 그랬죠? 일본어도 많이 늘었겠구요. 의사 아드님은 지금쯤 어디에서 가운자락을 날리고 있는가요?

연제여사께서는 여전히 중동에 사시는 겁니까? 도민이 경숙이 그리고 마음씨 좋은 아저씨 큰 아이(?) 건강하시지요? 늘 포근하셔서 그 집 가족의 행복은 걱정이 안 됩니다.
예림선생께서는 시종일여, 초지일관 매사에 은근하시지요? 제가 그만만 닮았더라면 뭐 하나라도 좀 잘했을 것인디... 은영이 졸업했겠는데요? 사윗감은 있습니까?
소해어른께서는 글이 나날이 발전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근데 아직도 노모님만 모시고 사십니까? 뭣하면 여기 열여덟 살 이쁜 아이 하나 보쌈이라도 할까요?
목양여사님! 우리 어머니 칠순 때보다 다섯 배 반은 더 젊고 활기차신 만년 소녀, 제가 있었으면 무조건 칠순전을 열도록 했을 것인디 정말 안타깝습니다. 처음 가락동 연구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오시던 때가 기억에 생생합니다.
구산어른! 학업을 마치시고 사회에 진출하신 느낌이 어떠십니까?^&^ 참 젊게 사시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란 생각을 했습니다. 캠퍼스의 낭만에 대해서는 나중에 차분히 듣지요.
구은어른! 여전히 서주동분하신다고요. 그 와중에 대치동을 울릴 색소폰 소리 캬하~~~·시커먼 필묵계를 떠나시어 음악계에서 필명을 날리시는 것은 아니시죠? 2월에는 출품하셔야 합니다.
화정어른! 강원도의 힘이란 말 유행하는 것 아시죠? 화정어른은 대치동의 힘이십니다. 아니 일원동의 힘, 강남의 힘, 한얼묵연의 힘, 한국의 힘, 필리핀의 힘, 인도네시아의 힘입니다.
상연어른! 어찌 소일하십니까? 가을 등산은 좀 하셨나요? 필묵을 멀리하시니 서예계의 손실이 큽니다.
담산어른! 그저 가만 가만 여전하시지요? 바바리코트가 잘 어울리시는데, 늦가을 비 뿌리고 플라타너스 잎이 날리는 날에는 거리를 홀로 걷지 마십시오. 요즈음은 파파라치가 많답니다.
필당여사님! 제가 좀 일찍 서두르지 못하는 바람에 이번에 작품을 자카르타에서 못 보게 됐습니다. 3만 여의 교포와 2억 2천의 인니인들에게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2월의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바깥 어르신 많이 좋아지셨지요?
다화선생께서는 여전하시지요? 안부나 더러 옵니까? 송하두목께서는 여전히 두목노릇을 안하십니까? 한 번 두목이 영원해야 하는데.....
청하여사께서는 꾸준하시지요? 그 정스러움도. 이젠 여기 저기 공모전 성과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외적성과를 위해서 공부하시는 것이 아님은 알지만 그런 면에서는 제가 송구한 마음이 많습니다.
문경귀염둥이 여전히 연락이 두절입니까? 동시를 안 쓰고는 못 배길 사람이니 그쪽 동네 어디 가서 물어봐야 할랑가?
금석도반께서는 아직 후배를 못 만드셨습니까? 여러모로 봐서 서열 상승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정히 안 되면 다음에는 호칭의 순서라도 뒤집겠습니다. 끝이 곧 처음이라는 진리는 아시지요?
그쳤던 머스짓의 경읽는 소리가 또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발 염원하는 저 소리처럼 모두가 평화롭게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동쪽하늘도 밝아오고 있습니다. 오늘도 멋지고 정 가득한 만남이 이루어지실 것으로 압니다. 모두 건강하신가운데 즐거우신 일들이 많이많이 생기시길 기도합니다. 내용도 없는 편지가 길기만 했나요?

2005년 11월 3일 새벽에
자카르타 슬라딴에서 손인식 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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