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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식 ()   2006-3-21  
  [ 목연 최경애의 『또 다른 내가 되어』를 보며]

목연 최경애의 『또 다른 내가 되어』를 보며

손인식(서예가)

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

공부!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참 쉽고도 지난하기 그지없는 물음이다. 필자는 지난해 2월 목연 최경애(木然 崔慶愛), 금정 박종숙(錦丁 朴鍾淑)두 현직 교사로부터 동시에 이 질문을 받았다. 필자는 이 물음을 던지는 그들의 진의를 금방 알아차렸다. 서예를 매개로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두 교사가 다름 아닌 서예공부에 대한 질문을 했으니 당연함이다. 그러나 필자는 3개월여나 되는 짧지 않은 기간을 소비하고 나서야 겨우 조심스럽게 그 답을 이메일로 전달했다. 그 당시 두 분 교사에게 가장 적절하다싶은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대답은 연습이 아닌 ‘작품’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 답으로 하여금 두 교사는 얼마간 고뇌에 빠졌었다. 그러나 두 교사는 이내 합일점을 찾아냈다. 기왕 하는 공부 이제까지와 달리 실감나게 해보자고 결정을 했다. 참 다운 연습이란 완성에 있고, 참 다운 공부란 깨닫는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왕 하는 것 창작을 하자고 한 것은 순리일 것이다.

프로를 지향해보자고 한 것이 어찌 주제 넘는 결정이랴. 두 교사는 2인전 형식의 개인전, 장소는 인사동 전문화랑, 초등 교과서 내용을 작품의 주제로 삼는 것, 저서 발간 등 까지 발 빠르게 하나로 묶어내었다. 그동안의 공부를 차근히 정리해보고, 현재를 가늠하면서, 미래를 예상해보자는 것은 그야말로 신나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을 해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동의를 구하는 것도 필요가 없어졌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선문을 하고 작품을 하며, 책을 발간하고 전시가 열리기까지 두 교사에게 어찌 갈등과 회의, 난관이 없었을까. 그러나 하나하나의 존재로, 작가의 존재 증명으로 작품들이 줄이어 탄생했고, 다시 한데 모아져 한 권씩의 저서로 거듭났다. 이젠 작품으로 책으로 그 수많은 제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동료들이나 교육관계자들에게는 자랑거리가 되며, 가족들에게는 커다란 행복이 될 순간만 남기고 있다.

서예란 무엇인가

서예! 자기 찾기다. 자유롭게 자기 찾기다. 자기의 존재 증명이다. 마침내 자기구원에 다가가기이다.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붓털들을 오직 하나로 경영하여 그 숫자가 의미하는 것만큼이나 많은 형상들을 쏟아내는 것이기에 그렇다. 여기기에 따라서는 그저 검은 색의 물 뿐인 먹물로 숫한 느낌을 지닌 선들을 창출하는 것이기에 그러하며, 더할 수 없는 순결과 무조건의 용납을 상징하는 순백의 화선지와 벗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역사 속에서 한 시대를 이끌었던 인물들의 직관력과 세상을 사는 지혜, 미학의 결정체들을 고전 속에서 오롯이 만나는 일이어서 또한 그렇다. 자연과학이 넘치는 물결로 다가오고 세상이 아무리 다변화해도, 서예란 시문과 더불어 격조 있는 학문이요 수양 방법이며, 내면의 세계를 풀어내는 수단으로써 그것이 옛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시대 변천과는 상관없이 품위와 함께 시각 성을 지닌, 정서적 측면이 뛰어난 예술이라는 구안자(具眼者)들의 평가를 뒤로 하더라도, 자칫 가벼움으로 치부되는 다변성의 현대사회에 살면서, 좀 구시대적인 것이 지닌 무게와 주체성을 즐기고 창의성을 기르고 넓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이쯤해서 서예 감상에 필요한 덕목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서예생명의 최우선은 뭐니 뭐니 해도 가없는 반복 학습을 통해서 깊이와 넓이가 형성된 선의 질감이다. 예로부터 인쇄된 글자에서 거리의 간판에 이르기까지 그 글씨가 아무리 정교하고 또 멋있는 구성을 지녔다하더라도, 예술품으로 남지는 못했다. 바로 선에 생명성이 없기 때문이다. 선이 지닌 다양한 동력, 즉 쓴 사람이 오랜 시간을 닦아서 이룩한 경지의 난이도(특히 겉 형상보다 안으로 정제된 품격)와 개성이 없으면 전승은 될지언정 예술이 되지는 못한다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서 자형의 구성과 공간, 그리고 전체를 이루는 개성 있는 장법(컴퍼지션) 또한 깊고 넓은 천착에서 얻어진 격조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물론 우리나라 서예의 성숙기가 시대적으로는 조선시대요, 배경으로는 주자학으로서 수양정심(修養正心)의 수단이 절대성으로 서예 안에 엄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전통적인 가치는 향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예의 존재 가치가 선에서 드러나는 갖가지 느낌과 그 조형 이미지를 중시하는 경향은 시대가 갈수록 오히려 그 도를 더해갈 것이 분명하다. 서예가 실용수단이라는 한 영역을 현대문명의 기기에 빼앗겨버린 지금, 서예는 오직 그 유물적 특성과 예술성으로 생명력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과서 내용을 주제로 한 서예

교과서!, 사람을 일컬을 때 이 말을 붙이면 그 사람이 진실하다는 증거가 된다. 문장에 이 단어를 붙이면 그 문장의 내용이 우수하다는 의미다. 특별히 역사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수록하는 사건을 제외 한다면 교과서에 실리는 내용은 그 어떤 것이라도 모두 알차고 진실한 내용이다. 건전하고 유능한 시민으로서 자질과 사회의 도덕적 가치 및 윤리관을 배우고 나아가서 국가관과 애국심을 기르는 교육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침이 모두 바로 거기에 들어있다.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1종교과서와 교육부장관의 검정을 받는 2종 교과서 두 종류가 공조하는 것을 보면, 교과서가 지녀야 하는 자율성과, 연구의 다양성 그 질의 심도에 대해 문호를 널리 개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과서는 교육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 하고 국민정신의 형성사와 맥을 같이 한다. 갑오경장이전의 교과서에는 전통교육 사조가 올곧게 드러나 있고 개화기로부터 시작된 근대교육, 광복이후의 교과서는 그 시대에 걸 맞는 최선의 내용으로 꾸며졌었다.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이 노골화기미를 보이던 시기에는 무려 57개에 달하는 뜻있는 민간단체들이 나서서 자주독립과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교과서 편찬에 진력을 다한 것이나, 이를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일제의 만행, 국권을 찬탈한 일제가 발 빠르게 민족교과서의 명맥을 끊어버리고 식민지 교육정책에 따른 교과서로 대체했던 것은 과연 교과서가 무엇인가를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교과서 내용을 주제로 한 서예! 얼마나 감동적이고 시사하는 바가 큰지 필자는 그 느낌을 이 지면에 다 표현할 수가 없다. 혹여 라도 현직 교사이기에 당연한 일이라거나, 더러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일 아니겠느냐고 함부로 귀결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필자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누가 일찍이 이런 주제로 전시를 하고 저서를 발간했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쉽게 마음먹을 수는 있겠으나 그것을 실천하기란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이 결실의 파장이 단순히 두 분 교사의 주변에서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하기에 전시와 책이 발간되는 과정을 살펴본 필자로서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이는 광복 직후의 초등 교과서 6종류 중 서예를 의미하는《습자》가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대서가 아니다. 최근에 일부 국회의원과 서예인 들을 중심으로 서예교과서 복원 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빗대서도 아니다. 이제까지 30여 성상을 바라보는 동안 초등학교 교육현장에서 가르쳐왔던 두 교사가 교과서 내용을 주제로 삼은 때로부터, 이렇게 책으로, 전시장의 작품으로 다시 탄생케 하여, 시공을 초월하면서 그 가치성을 내보일 것이기에 곁에서 보는 자의 마음이 이리 뿌듯한 것이다.

목연과 금정, 두 선생께서는 필자에게 말했었다.
“가르치는 일과 상관없이 체계적으로 교과서를 정독하고 나니 참으로 감동스럽다.”고. 그리고 그 “내용의 다양성과 깊음, 지니고 있는 전통성에 대해서 새삼 깨달았다.”고 밝혔다. 물론 그 말 속에서 깨달음에 즈음한 겸손이 가득 배어있다는 것을 필자도 안다. 그들은 그 겸손함과 진지함으로 희망이라는 봉우리에 한걸음씩 다가서서 이제 남다른 결실 하나를 맺어놓았다. 간추려진 금과옥조의 단어와 문장들이 그 길이를 헤아릴 수 없는 묵흔과, 산처럼 쌓여졌던 파지 더미를 통해 교과서 밖의 교과서를 창출해 놓았다. 오직 교사를 천직으로 여기는, 다시 태어나도 선생의 역할을 다 할 것이라는 두 중견 교사의 꿈과 사랑, 미래의 희망까지 담겨 감동! 감동으로 우리 앞에 또 다른 가치로 선 것이다.

목연 최경애의 『또 다른 내가 되어』

목연 최경애의 『또 다른 내가 되어』를 바르게 감상하기를 바라는 분들을 위해, 필자는 감히 부탁을 드린다. 짧지만 위의 서예 덕목을 반드시 인지하시기를 바란다. 목연이 지닌 서예작가의 역량과 그의 작품이 지닌 만만찮은 격조에 흠뻑 취해볼 수 있음이 삶에서 꼭 필요한 고급한 아취의 순간일 것이기에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목연의 이번 작품들을 일별해보면 우선 그 폭이 매우 넓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한글은 물론 한문의 각 서체가 두루 구사되어 있음이 눈길을 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양함 가운데에서도 초지일관 그다운 선과 구성의 묘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그의 작품에서 완숙미와 개성이 아직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의 타고난 기질과 창의력을 만끽하기에는 아무런 아쉬움이 없다. 특히 지금까지 취미의 범주에서 학서를 해 온 직장인임을 감안해보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나아가 그가 이번 전시를 통해서 얻은 작품 제작 경험을, 새로운 각오와 계획으로 드러낼 수 있는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새롭게 열릴 세계를 기대해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전시는 포만감으로 가득하다.

목연은 필자가 동학들과 함께 이끌어온 <한얼묵연전>에 1993년 제3회부터 참여하여 16회를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 십 수 연간을 꾸준히 참여하면서 연찬을 거듭해왔다. 그 기간 동안 목연은 국전과 미술대전을 전승한 권위의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네 차례의 입선과, 대한민국현대서예대전, 경기서예대전, 중부서예대전, 화성서예대전, 정읍사서예대전 등 전국규모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차례 수상(약력 참조)하는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동학 중에 한 사람은 그에게 ‘최우수’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였다. 일정 자격을 갖춘 작가에게 주어지는 전문작가라는 의미의 초대작가 반열에 오른 공모전이 무려 4곳이나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목연의 공모전 참여는 오직 바르게 학서를 하고자 하는 한 방법이었다. 스스로 갈고 닦은 것을 안목과 권위를 지닌 공모전을 통해 객관적인 심사를 받아봄으로써 성취의 정도를 가늠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목연은 수상을 했을 때는 물론 낙선을 했을 때에도 그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당락이나 수상의 결과는 다만 당시의 심사 결과일 뿐 그 자신은 그저 노력한 만큼 쌓여진다는 진리를 견지하는 힘 때문일 것이다. 그런 목연이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오직 자득에 전념할 뿐 일체의 공모전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서 그의 학서 목표가 세속적 결과에나 연연함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그러한 학서의 본질과 이상을 지닌 목연이 아니었다면 감히 이번의 전시회와 저서 발간을 실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밝히거니와 전시 작품들을 위시해 알찬 자서, 창작 단상, 에세이를 두루 엮어 저서를 발간하는 경우는 프로의 세계에서도 결코 흔치 않다. 이를 아는 필자로서 귀감이 될 목연의 긍정과 실천력을 거듭 거듭 밝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 곧 미덕일 것이란 생각을 한다.

목연의 작품들을 살핌에 있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하나 작품의 내용이다. 주재인 교과서를 대변이라도 하듯 서정성 짙은 재제에서부터 격언과 도덕, 윤리성을 함뿍 지닌 내용들이 고르게 선문되어 빛을 발하고 있다. 이들 내용은 매우 다양한 서체에 의해 내용이 지닌 정서와 맛깔을 유감없이 잘 드러내고 있어서 더욱 새롭다. 이는 목연의 폭 넓은 수학의 정도와 서사 능력을 한껏 발산하는 빌미가 되기도 했는데, 하지만 예의 그 내용의 친근함으로 감상자를 망설임 없이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마치는 말

목연은 참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오직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교육관”이라는 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필자는 20여년 가까이 그를 봐오는 동안 여태껏 한 번도 그를 향해 싫은 내색을 하는 사람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음으로, 그가 사랑이 많은 사람임을 확신한다. 시간이 부족한 그를 위해 무던히도 많은 횟수에 걸쳐 먹을 갈아주고, 유난히 야간을 무서워하는 그가 작품을 하는 밤이면 아예 비디오테이프 2~3개를 준비하여 곁을 지켜준 그의 부군 성광제씨의 외조에서 목연의 사랑을 확인한다. 지금은 대학생인 두 아들들을 위해 교사직을 사퇴하려 했을 때, 두 아들이 오히려 현직의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사퇴를 적극 만류했다는 데에서도 목연의 사랑은 확인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시어머니에게서 한 번도 싫은 내색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즉 한국적 고부관계를 훌쩍 제쳐버린 사실에서 목연이 지닌 사랑의 절정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해낼 수 있다.

크기를 알 수 없는 목연의 사랑은 특별히 이번 전시와 책 발간을 통해 가감 없이 빛을 발했다. 한 가정의 며느리요 아내이며 엄마로서의 사랑, 교사로서의 아이들 사랑, 자기 삶을 사랑하는 한 여성으로서의 세심하고 깊은 사랑이 작품을 창작하고 자서와 단상, 에세이를 쓰는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사랑의 결정체 『목연 최경애의 또 다른 내가 되어』가 탄생된 것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한다.

사랑의 힘은 무한한 전이성을 지녔기에 긔 더욱 아름답다. 눈여겨보면 이 세상은 온통 사랑덩어리이다. 그 사랑이 있어 오늘 우리 모두는 참으로 행복하다.

--목연 최경애의 『또 다른 내가 되어』는 2006년 2월 22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의 겔러리 라메르에서, 금정 박종숙의 『時空』과 함께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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