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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식(서예가, 서예로닷컴대표이사)     
  [曉峰 余泰明의 삶의 藝術 圖像]

실천 이론, 이론 실천
예술에 있어서 이론이란 역사의 성찰이면서 현대의 창작 원동력이다. 현실을 이해하고 감각해내는 하나의 틀인가 하면 창작자가 경험하고 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제거하는 기반이자 전형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창작자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이 이론적으로 체계화되면 될 수록 그 자체의 권위 속에 파묻혀 때로 현실의 모순을 제거할 든든한 기반이나 모범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잃으며, 정작 실제창작의 현장에서는 겉돌기 일쑤이다. 곧 현실에 기초하여 창작의 기반이 되기보다는 이론 그 자체를 체계화 시키는데 얽매임으로써 매우 정태(靜態)적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진보적 이론은 늘 공허함으로 낯설게 하고 보수적 이론은 현실에 기초한 새로운 창작품의 뒤꽁무니만 쫓고 있음을 우리는 자주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에 기초하여 결론을 찾는 것이어야 하며 창작품을 형상화 하는데 있어 늘 살아 있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天地人 / 54×41cm

이에 작가가 이론 활용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창작물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형상화하느냐 하는 것과 직결된다고 하겠다. “나는 작품을 어렵게 풀려고 하지 않아요. 표현예술이 너무 학문적인 것에 편중되면 거기에 매여서 시각 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봐요. 작품의 글감을 고르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집니다. 예술작품으로서의 글감이 되어야지 문학의 내용에 얽매여서는 안 되겠지요. 이론과 실기란 당연히 병행해야 하는 것이지만. 나는 학문적 이론에 치우치기 보다는 예술을 실천하는데 더욱 관심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주불 한국 문화원(7월 2일~9일), 주독 한국 문화원(7월 15일~30일)의 초대전을 갖는 효봉 여태명(曉峰 余泰明,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서예과 교수), 그의 몇 마디의 말속에는 잘 익은 석류 알갱이 빛깔의 작가관이 들어있다. 타고난 예지력과 진지한 성찰, 쉼 없는 실험과

天地人 / 49×37cm / 2002

도전으로 이미 예술이 시대와 개인의 사상과 삶을 반영하는 것 이상의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해 내었음이다. 이 시대를 사는 자기의 모습과 생각, 삶의 형태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만이 진정한 예술생명력을 지닌다는 것을 그는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를 직접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효봉은 누가 뭐래도 진정한 작가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그는 현직 교수이지만 정치한 이론을 말하고 정리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이론가로 불리기보다는 이론을 예술실천의 실마리를 포착하고 형상화 하는데 필요한 만큼만 적절히 활용하는 전형적 창작자로 드러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가 이론을 도외시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발표한 논문의 질과 양이 만만치 않거니와 그의 작품 곳곳에 이미 정치한 이론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 초대전에 출품되는 작품들도 그러한 인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들로서, 가능한 초대전 주관 처에서 요구하는 바를 수용하면서도, 한글과 문인화, 현대서예의 형식을 지각(紙刻) 작품과 조화하여 그 만의 독자적 작품을 서구인들에게 내보이려 한다.

天地人 / 41×55cm / 2002

하나의 산에는 하나의 정상이 존재한다.
효봉은 자연의 이치를 실천하려는 욕심을 감추지 않는 작가이다. 자기의 힘으로 자기 닮은 하나의 봉우리를 쌓으려 한다. 이미 여러 차례 골짜기와 능선을 긋고 크고 작은 봉우리를 쌓고 허물었고, 이번 초대전을 통해 또 하나의 자락을 펼친다. 그로인해 생겨날 정상, 그 정상의 봉우리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가적 욕심을 이루기 어려운 욕심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작가적 행보를 떠나서 일상의 어느 곳, 어느 때라도 그를 대하고 있으면 그가 남다른 힘을 분출하는 에너지의 화신이라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관의 현대미술아카데미를 통해 그에게 현대서예의 활력을 불어넣어준 김태정교수(대구예술대학서예과)의 글은 단적으로 그를 대변한다. “…(여태명이)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하여 열성을 다하는 모습은 작가로서의 마음터밭이 남다를 데가 있었다. 건강과 지칠 줄 모르는 그 성실성은 작가가 감내해야 하는 끈질긴 노동성을 체질적으로 타고난 사람이다. 성격은 솔직하고 꾸림이 없으며 적당히 유머스러워서 친소를 가리지 않고 잘 어울린다. 게다가 술이나 한잔 들어가고 보면 곧장 엉뚱한 끼가 발동해서 사람들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재치와 천질을 아울러 가지고 태어났으니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또한 구진중교수(중국 중앙미술학원)는 “여태명교수는 풍부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도식의 변화가 매우 풍부하다.

한글서예, 고전풍격의 수묵화, 순수추상적인 제작, 아니면 서예와 회화가 결합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상이한 방향의 탐색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그것은 사람들이 그의 총체적인 풍격을 인식하는데 불리하게 작용하지만, 한 예술가의 매우 활발한 감각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이에 덧붙여 “여태명의 작품에서 표현되는 우아함과 세밀함은 사람들에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것은 당대의 창작에서 많이 얻기 어려운 정신적 함의이다. 여태명의 거칠고 면밀치 않고 사소한 과실에 구속되지 않는 그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그와 사귀는 시간이 길어갈수록 그의 세심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최병길교수(원광대학교, 철학박사)는 “효봉 여태명의 작품을 한 마디로 말하라 하면 필자는 주저 없이 그것은 “격식을 초월한 것”, 즉 형식의 틀을 벗어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라 말하겠다.”고 했다. ‘남다른 마음 터’, ‘성실성에 기반을 둔 끈질긴 노동성’, ‘재치와 천질’, ‘풍부한 상상력’, ‘거칠고 면밀하지 않은 성격’, 그런가 하면 ‘사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발견되는 세심한 면’, ‘격식을 초월한 무한한 자유추구’ 등 사실성을 근거에 둔 그에 대한 평가는 그의 작품을 충분히 예견케 하거니와, 작품에서는 또한 온통 그의 분신으로서 채취를 만끽할 수 있으니 서여기인(書與其人)이란 말이 틀리지 않음을 또 다시 확인한다.

天地人 / 41×55cm / 2002

효봉 여태명
효봉 여태명! 그는 분명 아직 진행형이다. 그러나 일별하기에는 너무도 다양하고 자유스러운 작품과 자취를 쌓아놓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구진중교수의 말처럼 “총체적인 풍격을 인식하는데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진행형의 작가로서 그의 자세는 참으로 많은 작가들에게 모범이 되고도 남는다. 그런 그가 빗어낼 정상의 봉우리는 과연 어떤 형태로 그 위용을 우리 앞에 자랑하게 될까? 그만이 그것을 설계하고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아직 그것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가 지닌 풍부한 상상력과 그에 걸맞은 실천력이 상상력 못지않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드러날 그 봉우리를 나름대로 어렴픗 짐작할 수가 있다.
“오래전부터 한국의 미와 그 의식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의 미의식을 살린 서예작품이 많지 않다는 것이 늘 아쉬웠지요. 그 안타까움은

자연스럽게 한국인의 미의식, 정서, 해학적 요소 등을 담는 작품을 하게 했지요. 앞으로도 그것이 온통 나의 작품창작을 지배하는 화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온통 효봉의 예술화두가 된 한국미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탐구하는 것일까? 우주철학에 근거한 한글의 도상을 극대화하고, 다시 민체를 꽃피우며,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추상성으로 드러낸 그 나름의 미감은 어디에서 근거한 것일까?“고대 암각화나 고전의 필사본, 갖가지 토속적 기물 등에서 많은 암시를 받았어요. 특히 어렸을 때 시골생활에서 받았던 인상들은 아주 소중한 것들입니다.”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골짜기에서 태어난 그는 달걀을 공책과 바꾸고, 마늘과 연필을 바꾸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계란을 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터진 계란이 주머니에 범벅이 되어 안타까웠던 일 등 사연도 참으로 많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으로 인해 행복을 한 아름 느끼고 산다. 특히 시골에서 보고 느끼는 가운데 벗으로 삼은 자연들이야 말로 효봉 예술의 진원지이다. 작품을 하다가 막혀 답답할 때마다 어린시절의 인상들을 떠올리면 창작의 실마리가 잡혔고, 어렸을 때의 진솔한 체험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난 작품이야 말로 그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는 현직 대학의 교수로서 당면한 서예의 현안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가옥과 생활환경과 함께 현대인의 의식구조가 바뀌자 문화가 다 바뀌어가고 있어요. 그러니 그에 따라 작품의 내용과 외형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지요. 일반인과 서예인과 거리를 좁혀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서예들이 먼저 스스로의 의식을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작품에서 이름부터 먼저 보는 것이 일반적일 만큼 작품에 개성이 없는 것은 그야 말로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특히 서예인 인식이 사회구조를 능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작품이 생활 속에 좀더 가까이 드러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생활서예 같은 것이지요. 그렇게 하여 서예가 일반과 좀더 가까워진 다음에는 보다 심도 있고 진지하게 한국적인 서예를 찾아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공모전도 다양성을 지향해야 하구요.” 역시 그의 예술적 오지랖을 옮기기에 이 지면은 턱없이 좁다. 부디 성공적인 초대전이 될 것이라 믿으며, 한달여의 장도에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월간까마 200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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