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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식(서예가, 서예로닷컴대표이사)     
  [한국서예의 활로를 생각하며 - 김수현전을 보고]

자기 해석력의 힘
아담하다. 여리다. 그러나 당찬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아마도 만나기 전 찬찬히 훑어본 도록의 작품으로부터 각인된 것이리라. 서예가에게 붙이기에는 다소 어색한 ‘신세대’란 단어가 썩 어울릴 것 같은 김수현! 계명대에서 서예를 전공하고 다시 중국의 중앙미술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다음, 중국과 한국(공 갤러리 2002, 9, 4 - 10)에서 개인전을 펼친 김수현의 당찬 이미지는 전시 작품 곳곳에 옹골지게 도드라져 있다.
“6주 정도 임서과정을 거치고 나서 바로 창작 훈련이 시작됐습니다. 임서와 창작을 폭넓게 병행하는 것이 중앙미술학원 석사 연구생 수업이었습니다. 특히 작품을 놓고 교수님과 1대1 토론을 많이 했습니다. 자료도 많고 창작력을 기르는 공부 방법이나 서풍이 저의 성정과 잘 맞아서 받아들이기 편안했습니다. …… 저는 작은 붓이 좋아요. 하루 종일 써도 힘든 줄을 모르거든요. 한국에선 큰 붓을 쓰는 경향이 있는데 큰 붓을 쓰면 우선 내가 붓을 이기지 못해서 힘이 들어요. 재료이건 표현 방법이건 자기의 생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맞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서예가로서 김수현은 아직 어린 나이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김수현의 전시작품들은 결코 어려 보이지 않는다. 고전을 임서한 것이나 창작을 시도한 작품들에 자기 해석력이 가실 들녘의 벼이삭처럼 여물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선질이나 구성이 비록 현대 중국서예의 한 전형을 닮아있다 할지라도 그냥 화운데이션이나 바른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나는 이것이 바로 김수현전이 던지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의미라 생각한다. 받아들이기에 편안한 공부 방법이나 서풍, 쓰는 사람에게 알맞아서 개성을 드러내기 쉬운 붓, 충분한 토론, 많은 자료,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한 공부라는 이유 있는 이유를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서단에 아까운 시간을 오염시키는 교학(敎學)이 너무 많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다. 자기 창작을 한다고 하면서 남의 눈치를 보고, 고전이나 체본을 으레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려니 하고 별 개념 없이 수용한다. 오직 공모전만을 목적으로 삼아 전전긍긍하는 것이 길가 은행나무에 계절이 바뀌어 앉는 것만큼도 대수롭지 않다. 그러기에 자신에게 알맞는 것을 거침없이 취하고 표현하는 일이 그냥 일상일 뿐인 신세대의 등장이 어쩌면 한국서예의 활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을바람처럼 스민다.

人至辱書 / 140×31 / 2000

楊維楨眞鏡庵募緣疏券部分 / 47×80 / 2001

일반적 평가와 작가 신념의 괴리
“수천 년의 중국서예사상 지금처럼 수천 년에 걸쳐온 모든 서체, 풍격, 양식이 한꺼번에 총집합 된 적은 없었다. 이것이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의 중국서예사의 역사적 특징이다. 이러한 역사적 특징을 김수현은 그의 작품에서 충분히 표현하였다.” “이것은 분명 가장 특징 있는 ‘중국풍’의 발휘라 할 수 있다(劉正成, 중국의 서예가, 이론가)”와, “창의성과 심미적 사고, 표현능력 등 각 방면에 있어서의 비약적인 발전(王鏞, 중국 중앙미술학원 교수)”을 했다는 것이 김수현에 대한 평가이다. 그러나 그것이 ‘중국풍’의 발휘라는 것에 집약되는 것에 대해서는 이 겁 없는 신세대도 어쩔 수 없이 사계의 눈길에 신경이 쓰이는가 보다. 그럴게다. 보수성이 강한 한국서단에서 ‘가장 특징 있는 중

국풍의 발휘’가 어떻게 비쳐지고 평가될까가 신경 쓰일 것은 당연하다. “기초가 되지 않았다”거나 “아직 멀었다”와 같은 애매모호한 말은 한국서단에서 커피를 마시듯 반복되는 단어이다. 자기와 다른 미의식을 지녔다는 이유로 다른 작가를 함부로 매도하기도 한다. 자기가 누구와 달라야 하듯이 다른 사람 또한 모두 자기와 달라야 하는 것이 진리이다. 하물며 누구의 표현방법을 절대 기준으로 삼고 있기에 기초가 되지 않았다는 말을 물 한 모금을 넘기듯 쉽게 하는가. 격조까지는 운운하지 않더라도 패기와 창의성이 발휘되는 작가들의 여러 유형의 작품들을 일방적으로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김수현의 작품전을 빌어 하게 된다. 예컨대 김수현의 작품에는 중국풍이 강하다. 현대 중국풍이 아우러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 서예가 한 사람을 쏙 빼닮거나 어느 유파의 아류에서 안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 할 자격이 없다는 깨달아야 한다. 김수현이 몇 년 사이에 현대 중국풍의 흐름을 파악하고 자기 해석력을 곁들일 수 있었다는 것은 그의 능력을 반증한다. 조금 더 나아가면 표현된 것 이상의 어떤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계속해서 “중국의 현대풍을 일방적으로 따를 생각이 없다”는 말이 아니더라도 변화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중국에서의 5년 동안은 새로운 것을 보기에도 바쁜 시간이었습니다. 깊이 천착할 시간을 여유롭게 갖지는 못했어요. 지금은 두루 넓게 보고 느낀 것에 만족하고, 박사과정 진학을 통해 많은 연구와 창작을 할 생각입니다. 그간 중국에서 배운 결과를 한국으로 가져와 스스로의 문제점도 진단해보고, 여러분에게 고언을 들은 것은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김수현은 이미 또 다른 목표 하나를 설정하고 그 결과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胸中之丘壑 / 70×45 / 2002

참다운 경쟁력을 위해
김수현을 지도한 김양동(계명대 교수)은 김수현전을 “서예의 심미적 정취와 서예의 근원적 생명력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에 한 가지 해답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고 했다. 바로 본질적인 질문과 해답을 찾는 신진들이 많아져야 한다. 이것이 한국서단이 진정한 경쟁력을 지니게 되는 일이다. 따라서 열린 공부와 웅대한 목표가 필요하다. 대학과 기관은 경쟁력 있는 서예가를 길러야 하고 작가는 스스로 신념을 가져야 한다.
“내용과는 상관없이 커리큘럼만을 보면 오히려 한국 서예과가 더 화려하다.”나 “학습자료 부족의 현실”, “학습자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아이디어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풍토 조성의 필요”, “서예 교류의 통역에 참가할 때마다 한국측 교류 단체의 성격이 공모전 위주여서 곤란했던 일”, 전통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훈련이 수반된 사람으로 평가되면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창작적 요소로 학생을 선도하는 왕용교수의 풍모”는 덮어두자. 그러나 “중국보다 우리나라에 서예과가 상대적으로 많으며 인적 자원도 풍부하지만 소수인 중국 전공자들이 창작의 수준은 높은 것 같다는 진단”, “대규모 공모전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개성있는 작품을 하면서 자유롭게 활동하려는 그룹이 늘어나고 있다는 현대 중국의 현상, 따라서 젊은 서예인들의 교류 필요 역설” 등은 김수현과 그 전시로 인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현실임에 분명하다.
끝으로 김수현을 비롯한 많은 유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중국의 이론과 실기에 경도되어 한국서단을 일방적으로 부정하려드는 우는 결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오직 새로운 이론과 실기를 심화함으로써 한국서예와 자신의 창작성을 살찌우기 바란다.

[월간까마 200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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