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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식(서예가, 서예로닷컴대표이사)     
  [산민 이용 제10작품전]

산민문화
“도쿄대생은 사상과 문화가 없다.” “비틀대는 엘리트” “에세이 못쓰면 노벨상은 없다.” “서재가 없는 집은 집이 아니다.”
신문들이 책을 소개하면서 붙인 글귀들이다. 자극적이면서도 단숨에 흥미를 끌려는 것이 미디어들이 내거는 타이틀의 속성이려니 하면서도 내용을 찬찬히 훑다보니 공감이 간다. ‘전문성에 대한 이해력은 물론이요 사회 전체를 보는 안목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고전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최신의 지식을 얻어 조화하되 더 나아가 이를 잘 활용하고 그것을 다시 기록으로 남길 것을 당부한다. ‘서재를 채우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머리와 가슴까지 채우라 한다.’ 한마디로 사회의 엘리트나 전문가 집단을 향해 높은 수준의 교양과 창의력, 실천력이 절대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인문학이나 사회문제, 지식인, 전문가에 관한 담론이야 늘 있어왔던 것이었고, 이 또한 동일범주 안에서 찾고 해결하는 방법을 다르게 제공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버릇처럼 한국서단의 상황들이 아울러 떠오르는 것은 붓잡이 서생이 지니는 어찌하지 못하는 정체성인가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서단은 열악한 환경임에도 위 신문의 내용에서 말하는 우려와 강조가 불필요한 전문인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 소개하는 산민여묵(山民餘墨)전(2002년 11, 29~12, 5, 전라북도예술회관)의 주인공 산민 이용(山民 李鏞, 전주대 겸임교수) 또한 대표적이고 모범적인 전문인이라는 것은 이미 한국서단이 주지하는 바다. 그의 연구실 서가에서 숨쉬는 가득한 자료가, 그 가득한 자료들을 섭렵하고 간추려 펴낸 저서 한묵금낭(翰墨錦囊)이, 다시 각종 서체의 작품으로 화하여 많은 사람들의 시각을 자극하고 마음에 여운을 남기는 작품집과 작품들이, 이번에 여묵(餘墨)이라 이름 붙여져 전시되는 화음 가득한 소품의 편운(片韻)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산민이 스스로 형성해 나가는 문화를 ‘산민문화’라 이름 붙여 당당히 소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다가드는 것은 기왕 겨울을 맞았으니 움츠리지만 말고 알싸한 찬 바람과 백설의 맛 즐기기를 권하는 당연함과 무엇이 다르랴.
花時同醉 / 13×62×2cm


진실을 취하는 방법
사람마다 호불호의 정도가 다 같지 않다고 해도, 추사 김정희가 서예스타라는 것을 공감한다. 왕희지나 안진경, 미불, 왕탁, 오창석이나 한글의 봉서등 많은 고전 자료들이 공히 베스트셀러라는 것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추사전이 열릴 때마다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가 스타이기 때문이고 손꼽을 만한 법첩들이 겉 표정만 조금 달리하여 다종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것이 생명력이 긴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이다.
만만치 않은 두께와 값에도 불구하고 이 베스트셀러 대열에 끼어 중판을 거듭하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산민 편저의 한묵금낭(翰墨錦囊, 다운샘, 1995)이다. 한묵금낭은 한마디로 어느 페이지를 들추어도 서예작품의 제재로 활용하기에 딱 알맞은 고전의 명구와 명언을 집성해놓은 책이다. 동종의 어떤 자료들보다 서예가들의 입맛에 착 달라붙게 되고, 그런 연유로 베스트셀러가 될 수밖에 없는 책이다. 그러나 필자는 한묵금낭의 베스트셀러 현상이 산민이 산출한 진실과 다소 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儉讓 / 18×50×2cm

곧 제재를 쉽게 고르기 위한 수단으로만 한묵금낭을 취한다면 그것은 산민의 방법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바로 산민이 전달하는 진실은 그 많은 고전자료들을 박람하여 서예작품의 제재를 간추려 산출하는 과정에서 전문가가 지녀야할 당연한 소양을 기른데 있다. 산민은 단순히 읽고 인용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일일이 기록하여 모았다. 그 책에 수록되어 있는 1200여 문항은 바로 산민이 10여년의 세월동안 500여권의 문헌을 참고하여 하나하나 직접 선구하여 작품을 했고 그 과정에서 해석까지 붙인 것이다. 이것이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 관계자의 눈에 띄어 한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오게 것이다. 그러니 베스트셀러를 만들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고전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 수 없었듯 한묵금낭 또한 각고 끝에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어디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하나하나 쌓음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일방적으로 취하기를 바라는 결과물이기 보다는 취하는 방법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결과물들을 잘 못 취하면 늘 그 결과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결과를 취하되 대상이 지니고 있는 과정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식견과 느낌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한묵금낭에는 산민의 진가가 들어있다. 산민여묵(山民餘墨)전을 소개하면서 한묵금낭을 장황히 들추는 것은 산민은 산민만의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고, 한묵금낭이 바로 그 ‘산민문화’를 이해하는 길잡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미 산민문화는 전북의 서단에 한 줄기의 강열한 활력이 되어 많은 학습자들을 선도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서도 그 진가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2003년의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를 치루기 위해 총감독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지만 지금까지 치러진 3차례의 행사가 모두 그의 기획과 솔선수범의 영향이 막대했다는 것이 서단에 다 알려진 사실이다.

작은 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
서예평론가 김병기(金炳基)전북대교수는 “산민은 진정으로 높이 오를 수 있는 작가이다. 그의 博習 정신과 尙識의 안목과 진정한 꾸밈인 정결한 振彩를 꿈꾸는 예술적 감각과 서예의 至難함을 아는 知難의 겸손함과 勇改의 의지와 용기가 있기 때문에 산민은 아주 높이 오를 수 있는 서예가이다. 그리고, 轉益多師와 以眞爲師와 天眞爛漫을 스승 삼는 성실함이 있기 때문에 산민은 장대 끝이 아닌 高山 위의 磐石과 같은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는 서예가이다.” 라고 했다. 산민과 그의 작품을 말하기에 필자는 아직 식견이 짧고 이 지면은 한정되어 있다. 산민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병기교수의 <博習, 尙識, 振彩, 至難, 知難, 勇改>와 <높이 오르되, 장대 끝이 아닌 磐石에 않기 위해>라는 1998년과 2001년 산민전의 전시 평문을 읽는 것이 최적일 것이다. 산민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참 많다. 조용하면서도 의지가 강한 사람, 큰 사람(실제로 그의 체구는 작은 편이다.), 대작(對酌)을 할 만한 사람(그러나 그는 술을 잘하지 못한다.), 사리와 진퇴가 분명하면서도 정이 많은 사람 등. 큰 것이 있으면 작은 것 또한 필수인 것, 크나큰 일들을 그리 매끄럽게 처리하는 어느 사이 산민은 ‘작은 것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꾸리고 다졌나보다.
고추잠자리 / 19×23cm

소품전이라서 산민여묵(山民餘墨)전이라 이름하고 겸손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이번 소품전 또한 이미 그가 치러 냈던 이전의 전시들과 마찬가지로 볼거리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많은 동도와 애호가들이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위에서 단편적으로 살펴보았지만 산민을 알고 나면 산민의 작품이 지닌 진실과 그가 작품으로 전하는 메시지가 선명히 보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산민여묵전을 성동격서(聲東擊西)하는 식으로 소개하는 이유이다.

[월간까마 200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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