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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식(서예가, 서예로닷컴대표이사, , )     
  [정상을 오르는 길은 많다]

정상을 오르는 길은 많다
- 서예, 구상과 추상전에 대한 보고서 -
손인식 (서예가, 본 전시 기획자)

뜻이 하늘처럼 높으면

서예가 한자 문화권의 전통예술이라는 것은 이미 세계에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일상적인 앎을 떠나서 시대사조와 개인의 철학이 깊숙이 배어있다는 것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서예가 지닌 미적 심오함에 대해서 경탄을 아끼지 않는 태도의 의미는 단순한 앎의 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작금은 관계자나 동양인은 물론 서구인들까지 서예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상황은 서예가 분명 동양의 전통예술이라는 일반적 가치를 능가하는 총체적 동양예술의 근간이 라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이 같은 평가는 차곡차곡 쌓여진 전통적 유산들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것은 현대의 모든 작가나 작품들에게 큰 후광이 된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이 부담이 되기도 하고 폐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후광에 힘입는 것은 좋지만 그에 걸맞게 전개하지 못하면 그 화살이 큰 파장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은 곧 현대의 작가와 작품이 그 나름대로의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논리를 의미한다.

이 자생력은 경제의 동향과 같은 표피적인 시류 현상에 흔들림 없이 자존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예술이 생성한 이래로 경제적으로 자존할 수 있는 큰 힘을 지닌 상태에서 맥을 이어온 적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하지만 누구나 작가적으로 자존할 수 있는 힘을 절실하게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에 힘을 기르는 실천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게 대두된다. 뜻이 하늘처럼 높다한들 실천이 없으면 무엇 하겠는가. 실천 방법 또한 얼마나 많은가. 각자가 그 다양한 방법을 실천해 볼 필요가 있거니와 본 <서예, 구상과 추상전>도 그 실천의 한 방법으로 기획된 것임을 밝힌다.

필자는 실천과 바른 알림 방법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한국의 서예가라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중국의 서법이나 일본의 서도에 비해 한국의 서예는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그 존재의 힘이 대중성과 바른 알림, 양 측면이 모두 비교적 미약한 편이라는 점이다. 이는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이는 현재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필자로서 더욱 절절히 실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대게 알려진다는 것은 작가들이 추구하는 예술적 본질과는 다른 수준이거나 작가의 책임 권을 벗어나 외적인 요소가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저변이 확보되고 나서 그에 따라 다양한 현상이 생겨난다고 볼 때, 서예전반으로 보면 일단 국내적으로나 국외적으로 많이 알려진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다음에 바른 알림을 위해 각자가 노력하는 것이 자존할 수 있는 힘의 한축을 기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서예기반이 국내외적으로 취약한 것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문제점이나 조직 차원의 문제점 등을 상정하여 분석되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다만 이글은 현대의 한국서예계의 다극화 현상과 연계하는 것으로 한정을 두려한다. 이 같은 관점 또한 필자의 현재 입장일 뿐이다. 본 <서예, 구상과 추상전>의 기획자로서 그 의도와 명분, 가치를 분명히 하기위해 덧붙이는 수준에서 언급을 하려는 것이다.


춤추는 대나무 / 70×145
김태정
윤선도의 시<오우가> 中
/ 35×135 / 손인식
圖象 / 35×135 /
전종주

정답을 찾기 위해

현대의 한국서예계는 분명 전통과 진보라는 양극화 현상을 넘어서서 다극화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전통의 수구현상과 퓨전 지향 현상, 그 틈바구니에서 나름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중도 또는 그 외의 현상 등이 나름대로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에는 추구하는 명분이 있고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래서 이 같은 현상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바로 희망이다. 다만 그 희망이 현실적 성취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적극적인 .방법론이 남아있다.

먼저 보수 현상에 대해서 살펴보자. 사실 전통을 동반한다는 것은 매우 든든한 배경을 지니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실험 일변도의 현상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낯설음이나 모자람, 지나침, 또는 가벼움 등을 피해갈수도 있거니와 그들에게 일침을 놓을 수도 있다. 수구의 변은 늘 당연할 수 있어서 더러 그 일침은 낯설음이나 모자람, 지나침, 또는 가벼움 등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전통을 중시하는 것은 늘 중요하고 분명한 명분을 지니게 된다. 그로인해 유파를 형성하기가 쉽고 세력 유지가 항상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예술이란 결과적으로 홀로서기임을 생각해 본다면 전통이 바로 여기에 이용될 때 가장 가치 없게 활용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한국서단의 문제점은 늘 여기에서 생겨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독자적 깨우침으로 인한 전통연구가 매우 가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전통이란 언제라도 갈고 닦여져야 할 것이지만, 그것이 세력에 의해 일방적 ‘편승’이 될 때 현재를 좋지 않은 결과로 몰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를 치명적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작가 활동이란 곧 창작활동을 의미한다. 우리가 추앙하는 역사의 명 고전이나 명가가 그 이전의 그 어떤 고전과 명가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 있는가? 아니다 없다. 그러기에 전통을 하려면 철저하게 전통을 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전통을 올바로 창작하는 창작처럼 좋은 창작이 또 어디에 있을까. 전통은 반드시 해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 어떤 것이냐에 달려있다. 행여나 자기 작품에 맹목적으로 전통을 따르거나 유파를 따르는 특성은 없는지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둘째, 진보의 특성을 살펴본다. 예술에서 가장 절대적인 것이 있다면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고 모색하는 정신일 것이다. 이야말로 고전을 고전으로 빛나게 하는 길이며 현재를 창조하는 일이면서 역사를 잇는 일이다. 그러므로 고전이나 흉내 내면서 자기다운 형식변화와 탐색에 무관심한 작가에게서는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은근하면서도 줄기차게 서예의 변화 가능성을 탐색해 간다는 것은 작가로서 당연한 일이다. 이 당연함은 늘 새로운 것에 대한 낯설음, 쌓여짐이란 배경이 없는 것에서 오는 모자람, 새로운 것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드러나는 지나침, 또는 가벼움 등으로 평가되기도 하겠지만 이는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과정일 수 있다. 때로 지나치게 타 장르의 조형 어법을 차용해서 ‘과연 서예인가’ 라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이 또한 한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진보형식을 추구하는 작가들 가운데는 서예의 특성은 선에 있으므로 오직 선 하나로도 서예가 성립될 수 있다거나, 서예를 ‘탈 문자화와 탈 필묵화해도 좋다’는 식의 논리를 그대로 표현으로 옮겨 논란을 빚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에 대해 부정적 측면의 언어적 논평보다는 이러한 실험적 행위들마저 또한 시금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과 도전이 늘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전통의 서예가 대중성이 적고 시각적으로 국제성이 미약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매도하거나 탈 문자나 문장화, 필묵화 되는 것은 더더욱 재고가 필요한 것이라 하겠다.

작품은 그 작품을 제작한 작가에게 책임이 있다. 보수라서 진부하지 아니하고 진보라서 난해하지 않으면서 작품이 지니는 공익성을 다하면 될 것이다. ‘좋은 작품 훌륭한 작품은 반드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李白의 將進酒 / 69×80
권상호
Have a nice day / 50×50 /
이호영

서예, 구상과 추상전

서예에는 분명 두 얼굴의 강한 이미지가 있다. 시대사조나 개인의 사상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면서, 형상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표현 실체로서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조합해 보면 이것이 곧 서예가 서예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드러난다. 서예는 이러한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특성을 지닌 상태로 수천 년을 이어져 왔다. 그리고 그 전통은 현대에 와서 오히려 더욱 소중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참답게 전통을 세우는 일이란 바로 시대성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시대성을 참답게 발현하는 것은 전통을 존중하는데 있는 것도 당연하다. 양극을 함께 수용하여 또 다른 다양한 극들을 탄생시키는 것 또한 절대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작가들 스스로가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고 반드시 해결해 나아가야할 문제이다. 그러므로 한 자리에 양극을 지닌 작품을 전시하는 <서예, 구상과 추상전>을 기획한 의도는 다분히 인위적인 것이었다.

과연 이러한 기획 의도에 작가들은 얼마나 부응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한국서단이 자생력과 경쟁력을 갖추고 수많은 작가들의 열정과 시간이 가치성을 지니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제적이고 도전적인 기획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이제 우리는 현대 한국서예의 가치성 평가에 있어서 그 시각을 보수냐 진보냐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탐구의 결과에 의한 자의식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작품은 작가의 의식을 반영한다. 당연히 경쟁력 없는 작가는 가치성이 부족한 작품을 양산할 것이다. 자의식을 앙양하는 방법은 많다. 우선 도제식 교육이나 공모전이 작가 활동의 주무대인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토론이 좀더 구체화 되어야 하고 실질적인 자료가 보완되어야 하며, 태마를 지닌 기획전 등이 더 많아져야 한다.

병폐는 고치고 덮어 나아가야 하며 서로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일부 의식있는 작가들이 자의식을 드러내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을 적극 옹호하면서, 발목을 잡는 각종 전 근대적 현상을 물리쳐야 한다. 언제까지 이를 뒷받침할 교육적 바탕이 부족한 상황만 탓하고 있을 수 만 없는 것이다.

이 전시는 2002년의 <외국어 서예전>에 이은 기획전이다. 외국어 서예전은 이제까지 필묵의 가시권 밖에 있던 알파벳을 인위적으로 작품의 주 모티프로 삼게 한 것이었다. 이는 상상의 한계를 주지 않음으로써, 또는 전통이라는 근거를 제거함으로써 철저하게 망쳐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현상을 깨달아보자는, 한 마디로 예상 불가능한 서예전을 치러보자는 것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고뇌하면서 작품을 제작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곧 “좋은 경험이었다”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창작에 대해서 조금은 자신이 생겼다”로 집약 됐었다. 그에 이은 본 전시는 그 경험을 되돌아 보면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자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이다. 과도기적 혼돈을 겪고 있는 현대 작가군들의 마음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보수와 진보, 구상과 추상, 전통과 현대, 이 양쪽을 수용하는 장을 제공함으로써 자의식이 충만한 작품을 터놓고 내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분명 이 전시는 한국 서예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 모색임과 동시에 문자예술의 구상과 추상을 통한 전통과 현대의 비교의 장이다. 보수와 진보가 그 가치성을 인정하면서 공존의 진리를 아는, 격조 있는 조화와, 참다운 변화의 실마리를 얻는 한 방법 실천의 전시회인 것이다. 이 전시로서 더러는 답을 얻기도 하고 더한 혼란을 겪기도 할 것으로 본다. 답을 얻은 작가는 확인과 함께 또 다른 답을 찾아 나설 것이고 혼란을 겪은 작가는 머지않아 답을 찾게 되기를 빈다.

끝으로 감히 필자가 간절히 바라는 바를 밝히려 한다, 더러 아시는 분이 계시겠지만 현재 필자는 뜻하는 바가 있어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거주하고 있다. 여전히 필묵이 생활의 전부이지만 그간에 해왔던 것처럼 (주)서예로를 통해서나 또 다른 방법으로라도 이 같은 행사를 기획하고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때가 되면 또 다른 방법으로 여러분에게 다가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아직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터라 확신은 할 수 없다. 분명히 밝히거니와 필자는 그간의 국내 활동에서 얻은 보람이 많다. 몇 차례의 크고 작은 전시기획, 글쓰기, 강의, 개인전 등. 이 같은 경험과 보람이 서예의 절대적 오지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새 생활을 하게 하는 용기를 주었다. 이 만용을 격려하는 의미에서라도 누군가 필자와 같은 작가적 입장에서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실천하면서 필자에게도 말석에 끼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이 전시회에 출품해 주신 모든 작가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리고 날마다 건강과 행운, 그리고 새로워지심을 간절히 기원한다. 또한 이 전시가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애써주신 「도서출판 서예문인화」의 박수인 사장과 이용진 편집장 등 관계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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