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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은(시인)     
  [도로 눈을 감으라]

이화은 (시인)



남북 정상이 50년만에 손을 잡는 대서특필의 사건이 우리를 흔들어 놓은 2000년 유월, 젊은 한 서예가의 그야말로 '대서특필'을 보기 위해 백악예원을 찾았다. 공사중이라 우둘투둘한 인사동 골목의 흙길이 마치 붓 한 자루가 머물다 바삐 떠난 붓글씨 속의 비백같다는, 제법 서예 관람가다운 생각을 하며.

인재 손인식은 40대 중반의, 아직 예술인으로서는 젊은 나이다. 평소에 조금 멀리서, 조금 가까이서 그를 지켜보면서 참 의욕적인 서예가라는 생각을 했으나,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우리 서단의 든든한 일꾼이며 머지않아 세계 속의 예술마당에다 겁 없이 붓질을 해댈 무서운 서예가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테마전이라는 것과 오랫동안 묵혀져 있던 향가를 주제로 삼았다는 데도 큰 의의가 있겠으나 내 관심은 그가 사용한 종이에 쏠렸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성경 말씀같이 옛 노래를 옛 종이에 담고 싶었던 것일까. 3,4백 년 묵은 종이, 그 종이를 찾아 그는 전국을 헤매고 다녔다 한다. 우리가 모른 체 하고 있는 사이 누가 그 종이를 몇백 년 동안 보관하고 있었을까. 종이는 때 묻고 구겨지고 낡아 있었다. 아니 나와 마주보고 있는 것은 종이가 아니라 시간의 뼈이며 누군가의 숨결이었다. 창살이나 병풍의 뒤쪽에서, 혹은 절간의 곳간에 숨어 때를 기다리던 은둔자의 얼굴들. 너무 여러 번 겹치기 글씨 연습으로 아예 새까맣게 되어 버린 그들을 보면서 나는 전생의 인연을 다시 만난 듯 왜 이렇게 저리고 아픈지.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 인생의 색깔이며 무늬가 달라지듯 한 서예가가 어떤 종이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격이 달라지는 것일까.

어쨌든 손인재라는 서예가가 종이를 찾아 시간과 경비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는 커다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좋은 종이는 태워 보면 안다고 한다. 화공약품을 사용한 종이는 태웠을 때 재가 까맣게 되어 땅으로 내려앉으나 한지는 흰 재가 공중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두고 전문가들은 순도 운운 할 것이나 나는 이 종이들을 향해 혼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혼이 담긴 종이. 광택이 나고 수명이 길고 부드러우며 탄력성이 있고 적당히 번짐성도 있어 겸손하게 먹을 품을 줄 아는 이 옛 종이들. 특히 180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백지 병풍에서 뜯겨진 종이들은 몇 겁의 세월을 망설이다가 일점 일획조차 찍지 못한 애틋한 사랑을 보는 것 같아 그 백치의, 때 절은 흰빛에 숨이 막힌다. 향가 25수와 서정주, 김춘수, 고은 등 시인 20명의 향가를 주제로 한 현대시를 서예작품화한 59편의 크고 작은 작품들이 1,2층에 전시돼 있는 백악예원은 화려하고 뜨거웠다.

아래층에는 향가의 농익은 향기가, 윗층에는 처용가, 제망매가 등이 새로운 언어와 맥박으로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 연지색, 남색, 하늘색, 호박색, 검정색 등 우리 고유의 곱고 다양한 색으로 물들여진 모시와 삼베를 이용한 표구는 작품의 품위를 한결 높인다. 지난 여름의 시인학교에서 본 그를 잊지 못한다. 그의 창 솜씨는 타고난 소리 태깔도 힘차고 곱지만 그가 서예로도 자유분방한 서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 억울해서인지 그는 그 이상으로 시인이다. 전시 3일째인 7월 1일 토요일은 시를 출품한 시인들이 직접 나와 자작시를 낭송하는 시낭송회를 특별히 가졌다.

김춘수, 오세영, 유안진, 오탁번, 이가림, 임영조, 신달자 등을 비롯한 유명 시인들이 어느 문학행사 때보다도 더 많이 나와 이번 전시회를 격려한 것은 한 젊은 서예가의 작업에 무겁고 귀한 의미를 두었으며, 또한 인재 손인식이 시인으로서도 사랑받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나름대로 해석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싶다. 최근에는 '세인인터넷'을 개설해 서예의 현대화에 앞장을 서는가 싶더니 이번 전시회와 동시에 작품집 『옛빛찾기』, 창작단상집 『아름다운 만남』, 시집 『붓꽃』을 한꺼번에 출간하는 정열을 보여 또 한 번 주변을 놀라게 했다.

시·서·화를 모두 하면서 능청스럽게 唱까지 하는 그를 일러 시인 유안진은 國唱이라고 말하지만, 펄쩍 뛰며 사양하는 그의 이면에 다소의 수긍이 보이는 것은 다만 내 밝은 안목 탓일까. 개장 때는 많은 선후배 서예인들과 그의 독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축하, 격려하는 모습에서 서예계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과 신뢰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시인이고, 또 서예쪽은 문외한이라 자꾸 詩쪽 이야기만 하게 됨을 양해 바란다는 말씀드리고 싶다. 말씀드렸듯이 나는 문외한이라 작품들을 마음대로 느끼고 마음대로 해석하는 재미를 만끽해도 무방하리라.

붓글씨에 대한 작은 안목과 고정관념밖에 없는 나는 우선 종횡무진 달리는 그의 붓길과 힘에 깜짝 놀랬다. 튼튼하고 변화무쌍한 획들이 종이를 박차고 액자 바깥으로 뛰쳐나올 것 같았다. 가을논의 알곡같기도 하고, 통통하게 살 오른 벼메뚜기같기도 하다가 풀 죽은 듯 한없이 겸손해지는 변화. '善芽'라는 두 글자를 둥근 종이 속에 담아낼 줄 아는 마음은 재치나 기지이기 전에 철학이며 그의 종교이리라. 둥금을 무한의 우주이며, 생명을 키우는 자궁이라고 해석한다면 오늘 이 둥근 종이 한 장 속에 담긴 한 글자가 얼마나 많은 또 다른 선을 예고하는가.

딸의 배냇머리를 잘라 붓을 매는 그의 비정의 부정을 아는지라 작품마다 이 글씨는 또 무슨 털로 썼을까 매번 호기심이 발동한다. 특히 구겨진 종이에 계호필(닭털붓)로 꽉꽉 눌러 쓴 작품에서는 구겨진 시간과 붓의 갈등이 팽팽하게 전달된다. 그의 글씨는 또 다른 그림이다. 떨지도 망설이지도 않고 기교도 없이 쓴 처용이란 두 글자가 왜 벗은 남자의 알몸 같아 보일까. 만인이 주시하는 가운데 천년 전의 남자가 벌거벗고 누워 있다. 몸을 가릴 건 오직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뿐이다. 남루하다. 그런가 하면 세월이 덕지 낀 종이 위에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먹물이 피운 꽃. 가랭이 쩍 벌린 꽃이라는 글자가 몸서리 쳐진다. 꽃?! 처용 아내라는 처절한 꽃이다. 손인재의 작품 속에는 쉴 곳이 많다. 바로 여백이다. 없으면 아니되는 공간이라고 그는 말한다. 어느 서예작품 치고 인장과 낙관이 없는 작품이 있을까만 그 크기와 모양, 찍는 위치에 따라 무한한 말을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다. 대가의 詩 앞에서 줄곧 주눅들어 있다가 쥐눈이 콩알만한 인장 하나 작품 한가운데 배꼽처럼 찍은 그의 치기가 본인은 오기라고 했으나 작품 바깥에서 보는 사람은 그저 즐겁다. 문득 고전 한 구절이 눈길을 끈다.

'꾸물거리며 구차히 사는 인생.' 안민가 중의 일부이다. 인생은 천년 전 그때부터 구차했던 것일까. 천년이란 시간의 부피가 갑자기 확 줄어든다. 시간과 공간을 단숨에 뛰어넘는 글의 위력을 새삼 느낀다. 어떤 예술이든 최고의 경지는 비움일 것이다. 공교는 담박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서예가는 붓도 때론 욕망의 덩어리라고 말할 줄 안다. 갑자기 정곡을 찔린 듯하다. 나는 시인도 달관한 시인은 싫다. 마치 인생을 다 살아 본 듯한, 다 살아 버린 듯한 시들이 밥맛을 잃게 할 때가 있다. 그것도 새파란 젊은 시인들이 그러할 때는 더더욱 역겹다. 수행하고 정진하는 수도자가 득도한 도인보다 아름답다.

갈등하고 번민하고 실패를 되풀이하는 과정이 우리들 삶의 내적 외적 진풍경이 아닐까. 최고의 미와 최고의 선을 향한 그의 욕심과 의욕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안심이 된다. 득음하기 위해 목청에 피를 돋우며 폭포 앞에 선 소리꾼을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예술에 도달점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독자가, 관중이 그렇게 느낄 뿐이다. 한 작품의 마지막 획을 긋는 거기가 이 젊은 서예가의 종점은 아닐 것이다. 획 속으로 인재라는 존재가 녹아 없어질 때까지 먹을 갈 듯 그는 자신을 갈아댈 것이다. 그러기에 미를 추구하는 인간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잔인하다.

이 끝없는 목마름 뒤에는 빙긋이 웃고 있는 神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다섯 살에 시력을 잃었다가 20년이 지난 후에 갑자기 눈을 뜨게 되니 자기 집을 찾을 수 없어 울고 있다는 어떤 청년을 보고 서화담은 '도로 눈을 감으라'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욕심이요 혼란이기 때문이다. 아마 첫 마음, 처음 붓을 들고 첫 획을 그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상징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이 시대에 시를 쓰고 서예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간직해야 할 말이기도 하다. 이 표절을 덕담이라고 하는 내가 몹시 부끄럽다. 도로 눈을 감고 새빛을 찾아가는 그의 붓길이 더욱 환하고 빛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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