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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식()     
  [사람 사는 세상 참 좁다]

사람 사는 세상 참 좁다

손인식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세상이 좁다. 사람 사는 세상이 참 좁다. 필자는 지금 한국과 인종과 문화가 완전히 다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산다. 초년병이라서 정말 타국생활 설움을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서예가라는 이유로, 한국의 서단 사건을 TV로 신문으로 보았다고, 아느냐고 인사를 받았다.

사람 사는 세상 좁은 것이 이렇게 기분 나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는 서예가! 서예가들이 이럴 수가? 할 것이고, 서단 내부에서는 피부로 느껴졌던 그간의 사정으로 볼 때 설왕설래가 많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전통을 통해 오랜 기간 동안 쌓아왔던 좋은 이미지 우스운 꼴 되기는 이렇듯 간단하다. 자연과 환경에 순응하지 않으면 이처럼 단숨에 다가드는 것이 강제성이다.

나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할 사람은 그렇게 하시도록 하라. 우리협회는, 우리 공모전은 아니라고 하시라. 한 목소리 우렁차게 내어 공익을 찾기 싫어하는 서단이니 어차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문제라고 하자.

허나 잘 생각해보자. 과연 이번 일이 매스컴과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사들만의 문제인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방조했거나 더불었던 것은 아닌가. 어쨌든 그 피해는 모두에게 미친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건만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어지간하면 공모전에 기생하는 악덕 싸구려 거간꾼들의 행태를 알 것이다. 이들을 한 마디로 작가가 아니라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라고 규정하자. 더 작가인체 하는 그들을 작가도 뭣도 아니라고 하자. 그래서 외면하고 “나 혼자 살지” 하자. 그러나 대한민국의 서단은 이런 사람과 저런 사람이 한데 모여서 바로 하나의 서단이다.

선과 악은 상대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니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과연 떳떳할 수 있는가. 물론 그들을, 즉 잘못된 무리들을 물리치는 방법을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더 잘못되면 된다. 더 철저하게 유치해지고 완전히 썩어야 한다. 썩는 일에 온통 시간을 바쳐야 한다. 그들보다 더 많이 바쳐야 한다. 그들의 비행도 다 노력하는 가운데 얻어진 삶의 방식이다. 그것이 소위 밥 먹고 사는 방법이었다. 어찌 보면 타고난 성정이 더 악질적이지 못했기에 이전투구하기 싫다고 물러나 있는 점도 있잖은가. 하라고 떠밀어도 성정에 따라 못할 사람은 못한다. 그러니 차제에 서로 반성하고 성숙하는 계기로 삼으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치유에 나서자는 것이다.

직접 관련이 없다고 해서 그 몇몇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모두를 위로해 주어야 하나가 될 수 있다. 가치 있는 좋은 전시가 있어도 기사 다뤄주기를 몹시 꺼리던 매스컴들이 때 만난 것처럼 떠드는 속성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찾아야 한다. 필자 또한 일원이므로 그 책임을 벗어날 길이 없다. 청이 있어 글을 쓰기는 하지만 이글을 쓰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그간 필자가 이런 저런 글쓰기를 통해서 시대환경에 알맞은 능동적 변화와 방법론을 제시한 적이 있었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면을 매우며 여러 가지 방향 중에 공모전을 중심으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공동체란 공동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아무래도 이번 사태의 원인을 짧게라도 짚어야 할 것 같다. 한 마디로 ‘공모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모전은 한 때 현대의 한국서단을 지탱하고 성장시킨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더러 문제점을 노정하더니 이젠 한국서단 전체에 심각한 타격을 준 망신스런 도구가 되었다. 좋은 약이라도 잘 못 쓰면 극약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꼴이다. 잘 못 쓰인 선례를 열거하는 것은 지면 아까운 일이라 생략한다.

뜻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심장 박동소리와 순수한 학습자들의 낙망의 눈길이 느껴진다. 발상전환의 때를 놓치면 어떻게 된다는 교훈이 이처럼 절실하게 다가온 것이다. 공모전은 이벤트성, 학습촉진, 타인을 통한 객관적 실력인정 등 좋은 점이 많다. 그러나 힘을 구축하고 그 힘을 활용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그릇되게 사고하는 사람들의 생리에 딱 부합되는 점도 공모전에 있다. 서단에서 가장 힘들이지 않고 효과(?)를 거두기 좋은 것으로 공모전이 사용된다. 좋은 행사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모전이 가장 왕성하고 대중적이다. 그런데 사용결과는 대부분 나쁜 쪽으로 드러난다. 새로운 발상과 노력이 없이 도식적인 방법으로 치루기 때문이다. 이제 상당수의 작가들이 공모전의 운영위원이나 심사위원 자리를 영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심사를 지낸 작가의 열에 8~9명은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고 한다. 옳지 못한 일을 했거나 묵과했다는 의미다. 이젠 심사를 했다고 해서 존경스럽게 보지 않고, 대상 탄 작품이 모두 좋은 작품이라고 믿지 않는 풍토다. 누구누구는 낙선을 했는데 나는 입선을 했고 누구누구는 입선인데 나는 특선을 하고 상을 탔다고 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진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데도 한국서단의 많은 작가들이 공모전에 발을 붙이고 산다. 현실을 과감히 털어낼 수 있는 마땅한 방법도 없고 또한 용기도 없는 고로, 이 구조적인 병폐에 한숨쉬면서 공생하고 있다. 누가 아니라고 장담하리.

길은 많다. 찾아보자. 그리고 실행하자. 모두가 참여하여 즐기는 축제를, 바로 서단사람 ‘나’를 위해 열자. 작은 모임과 큰 단체가 많고 지역과 중앙이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이미 있는 단체들이 욕심을 버리고 조금만 변화를 주면된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 해서 또는 기득권자들이 다소 힘을 잃는 일이라 해서 도입해보지도 않고 부정부터 한다면 과연 이것이 창작을 목적으로 한 작가들의 공동체라 할 수 있는가.

공동체란 공동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경쟁이 없이도 함께 즐거울 방법을 택해야 한다. 공모전의 경쟁은 어떤 방법으로든 이기려는 승부사(?)들을 양산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라도 문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힘을 구축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또 다른 문제점이 야기될 것이다. 이것이 어찌할 수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의 현상이라면, 강제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언제라도 책임은 자기에게 있을 뿐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이미 서예관련 홈페이지들의 게시판에 많은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작품에 대한 공모를 하기에 앞서 서단을 활성화 할 방법에 대해 공모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필자 또한 제시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러나 단번에 어찌할 대안은 필자에게 없다. 공모전 이상으로 또는 상응하는 이익을 줄 수 있는 어떤 대안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만연한 매너리즘을 물리치기도 만만치 않다.

다만 무순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너무도 평범한 말, ‘서단 전체의 의식변화’다. 그리고 새로움을 위해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선 뜻이 앞선 사람들부터 변화를 실천하자.

첫째, 상대방 높여주기 운동을 벌이자. 우리는 서로 다름으로 인해 존재하고 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자기와 같지 않다고 해서 배척하는 것이 만연하다보니 악성이 되었다. 서단에서 시작한 상대방 높이기 운동이 전 한국사회에 퍼지게 하자. 예술처럼 칭찬에 합당한 것이 어디 있는가. 높여주기는 곧 양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힘을 합쳐 정부와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00문화상이니 해서 상을 많이 만들자. 그리고 서로 양보하자. 아무리 양보해도 우리 중에 누군가는 그 상을 타는 영광을 누린다. 기금도 공모전의 운영도, 심사도, 상도 특선도 서로 양보하는 것이 진정으로 서로 사는 길이다. 바로 오늘부터 실천하자. 절대로 서예인이 서예인을 폄하하지 말자.

둘째, 개인이든 그룹이든 각 협회든 가장 가까이 있는 팬들과 소비자를 위해 서비스를 하자. 스스로 팬이 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을 최소한 실망시키지 말자. 그들에게 무엇을 주고 환심을 사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곧 좋은 본보기나 상품이 되어야 한다. 내가 좋자고 하는 일이 남까지 기쁘게 하는데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공모전을 통하지 않고도 좋은 본보기가 되고 상품이 되는 방법 하나씩은 각 협회나 각자에게 다 있을 것이다. 알맞은 것을 고민해서 찾자. 다만 너무 쉬운 방법으로 하려고 하지 말자. 안하느니만 못할 수가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 있다. 분기별로 10명의 작가들을 묶어 작품 5점씩과 예술적 특징을 좋은 점만 써서 책으로 발간을 해보자. 비용은 계획서를 잘 짜서 관련기관에 기금신청하고 아니면 협회별로 또는 개인이 격조 있는 홍보용 책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년이면 4권의 책이 되고 수록 작가는 40명이 된다. 연말과 같은 시기를 보아 이들이 한데 또는 각기 이름을 걸고 발표회를 갖자. 서서히 스타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스타론은 더러 나온 이야기다. 필요성은 느끼면서도 누군가 구체적인 방법으로 실행을 하지 않았다. 작가에 대한 작가론과 작품에 대한 예술론은 필수다. 상품에 대한 포장과 설명은 기본 아닌가. 이것이 파생할 갖가지 이득은 지면관계로 열거하지 않겠다. 다만 이 가치가 공모전 심사하는 것보다, 대상을 수상하는 것보다, 두고두고 낳을 것을 확신한다. 이 의견에 대해 겸손한 마음으로 사양하는 작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모전에서 심사와 수상을 하려는 욕심에 비하면 이 겸손은 오히려 오만이라는 생각이다. 뜻은 있는데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것이라 실행하기 어렵다면 이런 일을 맡아 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셋째, 낙선자가 없는 공모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축제가 된다. 서예가 다양해져서 나아갈 길도 많이 생긴다. 진정한 학습 방법도 거기에서 더 많이 제시될 것이다. 이벤트성이 줄어들 것 같지만 오히려 이전에 비해 이벤트가 아닌가. 의미 없고 속 보이는 경쟁을 떳떳한 척 위장하는 것 보다는 얼마나 서로가 떳떳한 일인가. 이 때 주제를 도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 이슈거리를 주제로 삼는 다면 이목도 끌 수 있을 것이거니와 공헌이 된다. 낙선자가 없으니 당연히 1등 수상자도 없어야 한다. 한사람이 1등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1등이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참여한다면 그 만큼의 이벤트가 될 것이나 실내 전시 불가능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는 도록 발간, 온라인 전시, 덕수궁 돌담길 전시 같은 것으로 변환을 꽤하면 된다. 그러는 사이 한편에서는 가능성을 토대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들이 생겨나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성장을 할 것이다.

서예단체들을 해체하라

한 쪽에서는 “초대작가 제도 폐지, 공모전의 운영이나 심사방식 개선, 공모전 자체 폐지”를 넘어서서 “서예단체들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황당한 말이라고 화를 내기보다는 “개인전이나 그룹전 등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고 평단과 관련 매체를 통해 검증”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를 먼저 수용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서예단체들이 서예인들의 권익보호나 우호증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공모전을 통한 돈벌이에만 매달려 이익집단화” 하고 있었음을 반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위 필자의 의견은 창출해 낼 수 있는 많은 것들 중에서 빙산의 일각이며 겨우 시작이다. 하나씩 실행을 하면서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본다면 훌륭한 의견이 생겨날 것으로 안다. 이를 위해 언제라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의견을 나누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 또한 한국서단에 꼭 필요한 것이라 하겠다.

월간 까마 200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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