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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획연재 > 서예의 회화미 회화의 서예미


의도인가? 우연인가? 필연인가?

글 인재 손인식 (서예가, 월간까마 편집주간)

서예의 회화미, 회화의 서예미를 탐색하면서 느끼는 재미 두 가지가 있다. ‘시를 읊으매 풍경이 절로 연상되고 그림을 감상하매 시의가 절로 느껴진다’는 매우 전통적인 논리를 확인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시의가 느껴지는 회화 뒷켠에는 매우 산문적인 방법이 동원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회화에는 분명 시가 들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포괄적 결과론이고 시의가 드러나기까지의 표현 방법이나 과정이 지극히 산문적이라는 의미이다.이에 비해 서예가 부호화 된 문자, 간결 담박성, 추상성 등을 지니고 완성되는 것을 볼 때 일관되게 시적인 요소를 함유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서예에서는 회화를 감상하는 가운데 느껴지는 것처럼 시의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따라서 서예에 시적 요소가 많다고 느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서예의 모노크롬적 재료, 단조로운 도구, 획의 성질, 표현해 내는 사물이나 의지가 추상적 개념으로 간추려진 것 등으로 인해서이다.

따라서 화론은 수필론과 통하는 곳이 많고 서론은 확실히 시론과 가깝다. 이러한 틈새를 들여다보는 일이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운보 회화의 서예미만 하더라도 그렇다. 전호에서 살펴보았듯이 문자를 직접적으로 써 넣은 회화에서나 문자를 모티브로 한 회화에서의 문자는 문자가 드러내는 형태나 뜻보다는 더욱 다양한 것을 상상하게 한다는 것을 확인해 보았었다. 여기서는 문자나 문자성이 없음에도 분명 서예미가 느껴지는 운보의 회화를 대상으로 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문자나 문자성이 없음에도 그의 회화에서 서예미가 확연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는 그의 회화를 제작할 때마다 문자성과는 관계없이 서예미를 염두에 두었을까? 그가 ‘문자도 시리즈’나 ‘점선 시리즈’, ‘서상도 시리즈’ 등을 연작으로 완성해 냈으니 서예가 지닌 조형성, 상징성, 추상성 등을 매우 중시하여 그것을 회화 완성의 한 방법으로 응용하였을 것을 짐작해 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분명 그의 회화에서 서예미를 염두에 두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연유일까? 왜 그의 회화에서는 유독 서예미가 많이 느껴지는가?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서예가 지닌 본질적 특성들이 과연 무엇인가를 환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간단히 정리해 보면 간결 담박미, 부호적 추상미, 선질미, 주제나 제재의 일관성, 역사성, 철학성, 음악성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이를 한마디 말로 종합한다면 무엇일까. 바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힘이 얼마나 은근하면서도 강하게 내재되어 있느냐에 따라 예술적 성공 여부가 가려진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럼 우선 힘의 측면에서 운보를 찾아보기로 하자. 통상적으로 우리는 힘을 기운이라 한다. 여기 말하고자 하는 ‘힘’, 즉 ‘기운’은 완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니 ‘기’, 즉 우주의 에너지적인 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낫겠다.

기를 오랫동안 논쟁거리로 삼아 온 성리학(性理學)적 측면에서 잠시 살펴보자. 회남자(淮南子)는 천문훈(天文訓) 개벽 설화에서 “몽롱한 것이 우주를 담고 있고 그 우주가 기를 낳으며 그 기가 운동을 통해 부풀어나서 맑고 밝은 것이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무겁고 탁한 것이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되었다. 이 두 개의 기가 교감이 될 때 ‘음양’이 되고 그 음양에서 4계절과 만물이 탄생한다.”라고 했다.

이는 다름 아닌 호연지기(浩然之氣)의 기(氣)를 말함이다. 턱 괘고 가만히 앉아 깊이 생각해 보자. 어떤 것이 또는 무엇의 작용에 의해 해가 뜨고 달이 지는가. 왜 날은 밝아지고 또 어두워지며 봄이 와서 꽃을 피우며 가을에는 낙엽이 지는가. 이것이 다 무엇에 의한 어떤 작용인가.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우주를 움직이는 기운이다. 완력이 아닌 보이지 않는 기운, 곧 자연인 것이다. 우리는 한시도 이 우주의 기를 섭취하지 않고는 생명을 부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생명을 부지하는 일, 즉 우주의 기를 섭취하는 일은 언제나 힘들이지 않고 자기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계속한다. 누구라도 숨쉬는 일을 수고롭다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것이다. 운보의 회화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여기저기서 느껴지는힘이다. 초기 수업 시기 이당 김은호 문하에서 그렸던 채색화류의 인물이나 풍경에서부터 거의 모든 장르에서 넘치는 힘을 엿볼 수 있다. 그의 힘은 역동적인 필세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제재의 선택에서부터 완성을 이끌어내는 데까지 작가적 치열성에 의해서 철저하게 내재되어 있는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운보 회화에서 서예미를 산출하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일관된 힘이다. 분명 산문적 특성으로 이루어지는 회화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일관된 시적 힘이, 앞에서 확인해 본 서예가 지닌 여러 특성과 같은 맥락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선의 탄력과 속도감을 분출해 내는 군마도나 투우, 미약한 힘을 지닌 참새지만 수백 마리를 한꺼번에 화면 속에 몰아 넣음으로서 운보 특유의 예술적 스케일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미술 평론가 박래부는 운보의 회화 세계를 일컬어 “기관차처럼 달려왔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바보 온달을 떠올리게 하는 ‘바보 산수’는 운보의 착한 심성, 거인다운 도량, 오랜 운필로 도달한 정신적 자유로움, 옛스러움을 이해하는 데서 체득한 멋과 해학 그리고 여유 등이 용해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다름 아닌 힘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앞의 언급에서는 일관된 힘을, 뒤의 말에서는 예술이 끊임없이 도달하고자 하는 자연미에로의 밀착된 힘을 느끼게 된다. 이 두 가지 말의 의미로서 운보가 파악될 수 있을 것일 진데 이 두 가지가 지닌 종극은 곧 하나이기도 하다

힘! 다시힘

운보는 육척에 가까운 키에 큰 몸집을 지닌 거구다. 운보의 거구적 모습은 거구적 작품 스케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바보 산수’를 그려낸 순박의 극치로 드러나기도 한다. 운보는 스스로 자신을 ‘바보’라고 한다. 이는 어렸을 때 잃어버린 청각과 반벙어리에 대한 자기 비하이기도 하겠지만 자기의 작품 세계를 대변하는 말일 수도 있다. 미술 평론가 박용숙은 운보의 신체적 불행을 “인간으로서는 부적절한 것이지만 예술가 운보로서는 도리어 축복받은 신의 은총이 아닌가도 여겨진다”고 했다. 운보는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는 한 장의 그림’이라고 했을 것이다.

신체 불행을 잊고자 하거나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우주가 에너지를 분출하듯 끊임없는 힘으로 분출했다. 말을 한다는 것은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 뜻을 전달하는 행위를 올바로 행할 수 없었던 운보는 그의 회화로써 대신한것이다. 운보는 이당 김은호의 문하에서 ‘채색화’로서 화업을 시작했다. (채색화란 무엇인가? 흔히 ‘채색화’라 하면 색채를 사용한 모든 그림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채색화란 동양 회화의 한 장르로서 특히 기법적으로 전통적인 수묵화나 수묵 담채화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예컨대 천경자씨의 그림이 전형적인 채색화이다.)

채색화로 입문한 그는 어느 순간부터 수묵의 신봉자가 됐다. 수묵이 무엇인가? 수묵은 서예 문화를 대표하는 확실한 매체이다. 그런가 하면 채색은 그림 문화적 매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화가이고 수업 시기의 상당 기간을 채색화에 전념했음에도 수묵적 정신과 그 특성을 발현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묵이 지닌 힘을 깨우쳤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묵의 검은 색, 이것도 색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검다’라는 것은 곧 빛이 있기 전을 의미한다. 색채 이전의 색채이다. 따라서 묵색은 분명 잠재되어 있는 우주적 에너지의 본질인것이다.

그는 어느 필담에서 “나는 (예술의) 한계성을 느끼지 않아요. 유한은 싫어요. 무한으로 막 뛰고 싶어요. 막힘 없이, 이런 나의 생리 탓으로 다양성이 나옵니다.”라고 했다. 그는 또 “나는 말 그림을 즐겨 그린다. 말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영리한 동물이며, 우리 인간을 위해 충용을 지니어서 인간과 생사까지 같이 하는 훌륭한 동물이며, 한번 노하면 하늘 높이 날뛰지만 마음을 너그럽게 지니면 순하기 이를 데 없다. 깨끗한 마음, 영리하고 지혜롭고 용맹스러움, 이런 성격을 우리 인간이 가진 감정 세계로서 화폭에 상징화 해보려 한다.”고밝혔다. 그의 이 말들이 지닌 의미를 음미해 보는 것, 이것은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확실히 의미 있는 일이며 쏠쏠한 재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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