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Home > 기획연재 > 서예의 회화미 회화의 서예미


감정의 요구에 부응한 文字圖 시리즈

글 인재 손인식 (서예가, 월간까마 편집주간)

옛 화론 중 유래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들라면 중국 사혁(謝赫, 500∼535년경 활동)의 「古畵品錄」을 꼽는다. 그는 고화품록에서 그림 그리는 여섯 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다.

그 6법 중 두 번째가 ‘골법용필(骨法用筆)’이다. 붓을 씀에 있어 힘의 미가 나와야 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붓의 괘적이 선으로 나타남에 있어 그 선이 ‘오랫동안 수련하여 단단함이 드러나게 해야 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선이 그림이나 서예의 근본 요소임을 생각할 때 골법용필은 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간파한 말로써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운보가 1950년대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도판 1)과 같은 작품, ‘문자도 시리즈’들은 1990년대 점과 선 시리즈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회화적이기보다는 서예적 특성이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들 일련의 작품들을 제작한 연유가 어디에 있을까? 이 궁금증을 “현대 회화의 새로운 추세에 표적을 맞춰 그림체[畵體]를 서체(書體)화시켜 본 것”이라고 해석한 미술비평가 김인환의 말로 조금이나마 해소해보자.

운보의 회화는 “자연적인 의미 대상의 세계, 즉 실형(實形)을 내세우지 않고 추상적인 상형문자적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수묵의 긴장된 필획과 형체 구성력으로 짜여진 이들 화면에서 우리는 가장 간소하고 절제된 내적인 힘과 동시에 가장 풍부하고 저장된 외적인 힘을, 무한히, 진행되는 힘을 느끼게 된다. 운보가 50여 년에 걸쳐 다듬어 온 필력이 한꺼번에 동원되어 분수처럼 쏟아지듯 충동적인 힘을 과시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유기적인 대상의 세계에서 대상을 차단시키고 직접적인 감정의 요구에 부응하여 감정이 충만한 서체화 된 기본 형체와의 유력한 결합을 실현시킨 작품, 응축과 팽창의 활력을 진작시킨 작품 세계이다.

운보의 예술이 측정하기 힘든 횡적인 넓은 폭을 지니고 있음을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라고 김인환은 말 하고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대상의 세계에서 대상을 차단시키고 직접적인 감정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 서체화 되었고, 그것은 문자꼴이 지닌 기본 형체와 같으며 이처럼 유력한 결합을 시킨 작품들이 ‘문자도 시리즈’임을 밝히고 있다.여기서 나는 운보의 전통주의 정신을 엿보게 되어 운보 회화가 지닌 서예미를 탐색하는 실마리를 찾았다. 예술적 상상력 증대를 위해 독자 여러분도 각자의 개성대로 탐색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전통주의는 반성으로써 진정한 의의가 있는것

“전통주의는 언제나 반성을 느끼고 있다는 데서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전통은 보존이나 고수하는 것도 아니다. 전통의 고수나 보존은 바로 타락을 의미하기 까닭이다. 무의미하게 전통을 소급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며 진심으로 전통을 이상(理想)한다면 원시로 돌아가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미래로 달음질치는 것이다. 그곳에는 진보가 있고 광명이 있는것이다.” 이 글은 「전통의 의의」라는 제목의 어느 평론가의글이다.

위 구절이 아니더라도 전통의 소중함과 그 가치에 대해서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 하는가? 무엇인가? 어디서 왔는가? 오늘 나는 무엇인가? 의 물음을 지니게 하는 것이 전통이고, 또한 해답을 안고 있는 것이 전통이며, 현재와 미래에 대한 대안을 지니고 있는 것이 전통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존재 가치를 분명히 하고 또 그 존재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것도 다 전통에 있다고 하겠다.나는 나에게서 찾아지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할아버지에게서, 더욱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던가. 따라서 전통은 한결같이 존중되어야 하면서 미래를 향해 가는 디딤돌이 되어야 하며 끊임없이 떠나야 하는 곳이면서 또 되돌아보아야 하는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올곧게 지니고 그것을 발현해 낸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내가 여기서 말할 수 있는 운보의 예술 체계는 지극히 한 부분일 수밖에 없겠으나 그의 작품에는 한결같이 주제, 소재, 제재별 테마가 있고, 각기 다른 테마임에도 그 가운데에는 도도히 흐르는 그 만의 특성을 지닌 주체적 예술 정신이 자리잡고 있음이 느껴진다.

운보는 인물화, 산수화, 풍경화, 화조화, 어홰도, 영모도, 기명, 절지, 초상화, 민화, 풍속화, 전기화 등 표현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리려 했다. 특히 청록산수 시리즈, 예수의 일생 시리즈, 풍속도 모사 시리즈, 서상도(瑞祥圖) 시리즈, 문자 추상 시리즈, 십장생 시리즈, 점, 선 시리즈 등 하나의 테마 속에 이루어지는 연작들은 바로 그의 예술 정신의 주체가 깊고 넓음을 증명하고있다.

반 보이드의보이드주의

이처럼 운보는 시각적으로나 기법적으로 참으로 다양한 화목의 회화를 이루어 내면서도 늘 그 중심에는 그만의 독자적인 예술 정신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 정신은 문자와 문장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창작 행위를 하는 서예가들에게 더욱 필요한 정신이라 생각된다.

일관된 주제와 비교적 단순한 재료와 도구로 인해 칼날처럼 지녀야 하는 예술적 주체 정신이 약화되지는 않는지, 또는 안일하게 대처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는것이다. 서예가의 예술정신을 너무 비하하는 것이 아니냐고 발끈하실 분도 있겠지만 기왕 서예 완성의 한 방법을 위해 ‘회화의 서예미와 서예의 회화미’를 탐구해 보자는 것이 이 난을 연재하는 나의 의도이니 주체적 예술 정신이 투철하고 이를 성실하게 실천해 낸 예술가가 있다면 드러내어 비교 분석해 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현대 건축에는 ‘마스터 플랜주의’가 있다.

‘보이드주의’, 즉 여백을 먼저 설정하는 주의인데 절대 인공적으로 손대서는 안 될 곳, 비개척지를 설정해 놓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현명하고 또한당연한가? 사람들에게 대체로 동양 회화의 특성이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대부분 그 첫째를 ‘여백의 묘’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틀린 답은 아니지만 나는 그 답이 모범 답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우주 가운데 여백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며 서양의 회화에도 항상 그 여백은 존재한다. 그러나 보이드주의식 여백이 아니다. 건축에서의 보이드주의가 집단화되고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을 위해 절대적인 자연 공간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면 동양 회화에서의 여백은 개척 다음에 오는 일종의 여유라고 볼 수있다. 운보는 바로 자기 예술에 있어서 반 보이드주의를 실천하고자 한 예술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운보는 동양의 필묵 예술에 관한 한 비정복의 땅을 남겨두지 않으려는 것처럼 표현 장르에 제약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개척 다음에 오는 비개척의 묘를 지극하게 생각한 예술가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그 한 예를 (도판 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십장생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서상도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이 그림에 어린 아이 글씨처럼 쓰여져 있는 소나무나 불로초, 거북 등 글씨를 회화 속에 서예미로 살피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독자 여러분께서 잘 아실것이다. 자, 우리 함께 이 그림의 이면으로 들어가 보자.

시원스럽게 펼쳐진 공간,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해, 달, 구름, 학, 사슴 등 몇 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몇 가지 속에 가려진 수 없이 많은 것들을 상상해 낼 수 있고, 그 결과 이 공간이 그냥 공간이 아니고 여백이 그냥 여백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해와 네 개의 해 그림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이 그림에는 모든 물상에게 그림자를 만들어 주던 해에게만 그림자를 그려 놓았는가? 나는 여기서 운보의 철저한 시적 상상력을 본다.

너무나도 귀에 익은 ‘시중유화 화중유시’를 재론하고자 함이 아니다. 바로 반보이드주의의 보이드주의를 본다는 의미이다. 모두 다 개척한 다음 철저하게 개척하지 않은 것으로 남겨 놓고자 하는 예술가의 실천, 일관되면서도 일관되지 않고 일관되지 않으면서도 일관된 예술 정신을 운보의 예술에서 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서예 속에서 발현해 낼 때 서예가 지닌 필묵의 현묘를 올바로 드러내는 것이 될 것이다.

 

 

Copyright ⓒ 2001 SEOYERO Co., Ltd / E-mail : soninjae@hanm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