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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획연재 > 서예의 회화미 회화의 서예미


詩中有畵畵中有詩

글 인재 손인식 (서예가, 월간까마 편집주간)

우리는 시불(詩佛)이라 불리는 왕유에게서 비롯한 ‘시중유화 화중유시’라는 말을 잘 알고 있다. 한 편의 시 가운데 한 폭의 그림이 잡힐 듯 그려져 있고 한 폭의 그림 가운데 한 편의 시의(詩意)가 오롯이 스며져 있다는 의미까지도.

시와 그림의 관계가 이렇거니와 시와 서예의 관계 또한 다를 바 없고 서예와 그림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더러의 서예 작품 가운데는 회화의 미가 새색시 볼의 연지처럼 도드라져 있고 더러의 회화 가운데는 서예의 미가 향리의 당산나무처럼 역사성적 의미와 깊이를 지니면서 격조를 더하고 있다.

심지어는 재료와 도구가 다르고 사상을 달리하는 서양 작가의 회화에까지도 서예미가 차용되어 영역을 깊고 넓게 하는데 공헌하고 있다. 이같은 미는 서예의 회화화이거나 회화의 서예화가 아니다.서예를 더욱 넓은 의미로 인식하게 하고 회화를 깊이와 무게로 유도하는 것이다.

추상·138.5×156cm(1975년 作)

그것은 기본적으로 서예나 회화의 요소가 되는 선이나 형태, 그리고 예술 작품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통일성이나 강조, 균형, 리듬성 등의 특성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서예가 절대적으로 선을 차용하고 있고 회화의 선도 굵기나 길이를 비롯한 다소의 특질이 다를 뿐 절대적으로 선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 난을 통해서 서예 작품이 지닌 회화미와 회화가 지닌 서예미를 탐색해 나가 보려고한다.

加味의道

데이비드 라우어는 조형의 원리를 논하면서 “예술의 여러 요소 가운데 선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데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인용문이 아니더라도 예술의 표현 요소로서 선이 지닌 무한한 다양성이 곧 서예에서나 회화에서나 절대적 존재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이다. 그간 서예와 회화가 그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나 동질적 현상에 대해서는 위에서 밝힌 선 뿐만이 아니라 재료나 도구를 비롯한 이면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매우 포괄적으로 연구하여 왔다.

그리고 그 연구는 상호 유기성을 증명 하였다. 작금은 탈 장르란 단어가 옛말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퓨전’ 현상이 심하다. 이런 현상은 음악, 미술, 심지어는 음식에 이르기까지 이질 요소끼리 융합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비교적 일관되게 그 뼈대를 올곧게 지키며 점진적 변천을 해 왔던 서예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일각에서 ‘현대 서예’라는 명칭으로 서예의 회화화 현상이 고조되고 있다. 그것은 정도에 따라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으며 과거에도 있었던 현상 중의 하나이다.

그런가 하면 회화의 노골적 서예성 도입은 언제부터라고 잘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반화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나는 이 난을 통해 서예가 회화적 특성을 도입함으로써, 또 회화가 서예적 특성을 도입함으로써 생기는 퓨전적 관점을 다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 서예에 가미되어 있는 회화미가 지니고 있는 특성과, 회화에 가미되어 있는 서예적 특성을 찾아 살펴봄으로써 어떻게 예술적으로 승화되고 있는가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 융합함으로써 탄생되는 새로운 것에 대한 관점이 아니라 원형질에 가미된 이질미가 주는 그야말로 ‘가미의 도’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서예나 회화가 추구하는 예술적 목적은 같다.

다만 표현 재료와 도구가 조금 다를 수 있고 그에 따라 외적 형식미가 각기 다른 부분이 있다. 그러나 내적 의상을 추상적으로 형성해 내려는 데 있어서는 매우 유사한 결과를 예상할 수도 있다. 예컨대 서예가 문자의 상형성을 강조한다던가, 회화가 사물을 축약 표현하는 데 있어 문자를 통한 부호적 특성으로써 사물의 본질이나 의상을 암시하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술이 목적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며 그 결과가 외적 형태까지도 유사성을 띨 때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예나 회화가 지니는 예술 목적의 상호 유기성 때문에 분명 서예가의 작품임에도 회화미가 짙게 스미고 화가의 그림임에도 서예미가 깊이 침전되게 된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미리 말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서예 작품에 짙게 스며 있는 회화미는 회화미가 분명하지만 회화의 고전이 되지는 못한다는 점과, 회화 작품에 침전된 서예미 또한 서예의 고전이 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다만 서예 속의 회화미와 회화 속의 서예미일 뿐인 것이다.

고암 회화의서예미

다음의 도판 1과 2는 고암 이응노(顧菴 李膺魯, 1904∼1989)의 ‘추상’과 ‘군상’이다. 이 그림 들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지나치게 서예적이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문자인지 읽을 수가 없고 또 가느다란 동일 톤의 선이 면을 구분 짓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서예적 특성이 매우 강렬하기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이 작품들은 문자적 형상을 선과 면으로 드러내고 서예적 점(點)을 데포르 시킨 것으로써 완성을 이루고 있다. 도판 1과 2는 그야말로 ‘동도서기(東道西器)’다. 다시 말하면 서구의 조형적 성과 위에서 동양 회화 정신의 정수를 표출한 것이다. 서구 회화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실히 수용하면서도 선과 면을 통한 문자적 이미지를 통해 동양 사상이 의미하는 우주율을 표현 하고있다. 고암은 어려서부터 서예를 배우고 그림을 익혔다.

군상·120×18cm(1976년 作)

또 일본에 가서 남화를 학습하는 등 동양 회화의 장르를 두루 섭렵하였다. 대학에서는 미술 교육자였고 유명 작가로서 화단의 중심부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늘 안주함이 없이 진보 성향의 화풍을 띠며 변모와 변모를 거듭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55세의 나이에 도불(渡佛)을 감행한 탐험가적 작가라는 점이다. 그는 끊임없는 조형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동양 정신과 서예 정신을 놓치지 않았다.

따라서 고암의 회화에서 서예미를 읽어 낸다는 것은 너무나 쉽고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우리는 고암의 회화를 통해서 서예가 지닌 내적 정신성과 외적 형상의 무한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의 표현 재료와 도구인 필묵의 위대성도 함께 알 수 있다. 미술 평론가 윤범모는 “고암이 모필로서 국제 무대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물론 그의 탁월한 조형 감각에 기인한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서 필력을 도외시할 수 없다.

그의 필력은 아마도 서예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서화동체설의 충실한 이행자인 고암에게 있어 서예적 기초는 뒤에 문자화로 구체성을 띄며 성과를 이루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에 생동감을 자아내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서체적 필력은 붓에 탄력을 제공한다. 문자의 결구력은 화면 구상에 탄탄함을 부여한다. 피카소는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만일 내가 중국 사람이었다면, 화가가 되지 않고 서예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서법으로 나의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피카소의 서예 예찬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고암은 피카소의 꿈을 대신 실행한 화가라고 믿어도 크게 허물은 없을 것 같다.”라고 했다.

피카소가 서예의 문자성, 또는 서예의 표현 재료나 방법 등을 알았다면 그것을 차용해 그의 그림을 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나, 고암이 피카소의 꿈을 대신했다고 판단하는 의미는 여러 갈래일 것이다. 그 중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의 하나가 회화가 서예미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문자의 상징성인가 하면 문자의 간결 담박미, 선이 지닌 지향성이 수반하는 무한적 상상력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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