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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진(편집장)   2004-08-15  
  [자카르타에서 아름다운 축제 여는 인재 손인식]
자카르타에서
아름다운축제 여는
인재 손인식
오픈식에서 인사말을 하고있는 작가

서예가로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활동하는 인재 손인식 씨가 현지에서 《아름다운 축제》를 개최하여 교포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아름다운 축제》는 무려 일년에 걸쳐 치러지는 대형 서예 이벤트로, 연말에 그동안의 성과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음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릴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행사는 재외 한국교민사회에서는 유래가 없는 문화 행사로서 인도네시아 한인사회에 관심과 감동을 불러일으킴은 물론, 어떤 형태로든 한국서단에 던지는 메시지도 크다는 생각이다. 이에 본지는 이메일과 메신저, 전화 등의 방법을 통한 인터뷰로, 십여 차례 주고받은 질의와 답변을 게재한다.


오랜만에 한국서단에 소식을 알리는 것이니 먼저 인사말씀을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우선 저를 다져준 한국서단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저를 아는 모든 분들께 감사와 함께 지면에 나섬이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실 인터뷰에 대해 여러 번 재고를 했었습니다. 맨주먹으로 다른 나라에 정착을 한 지 일년여에 무엇을 왈가왈부 할 수 있겠습니까. 특히 작품의 측면에서 크게 새로워진 것이 없으니 작가로서는 더욱 할 말이 없습니다. 『월간 서예문인화』 6월호 김태정 선생님의 서예칼럼 「미래를 만드는 서예」를 읽고나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따라서 다만 한 사람의 작가가 전혀 다른 토양의 타국에서 정착해가는 생활의 일부를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이라 여겨주신다면 서로가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 인도네시아 대한민국 홍보쎈터 소장

우선 《아름다운 축제》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아름다운 축제》는 이곳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정서를 한국의 전통예술로 드러내는 축제입니다. 교민들의 고아한 사상과 은근한 정취를 담아 지어진 <가훈과 사훈, 좌우명, 상호, 공동체명>을 서예와 그림으로 제작하여 전시를 하고, 책을 발간하며, 이를 널리 알리는 행사입니다. 가정에서는 어엿한 가훈, 회사에서는 품격 있는 사훈, 개인에게는 격조 있는 평생의 지표, 우리의 전통미가 물씬 풍기는 상호나 공동체명을 통해 자카르타 곳곳에서 우리 문화의 한 단면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보자는 것이죠. 특히 주문된 작품 전체와 그에 대한 해석 및 소장자를 수록하고, 그 정서의 근간을 풀어낸 논문과 《아름다운 축제》가 창출한 영향 등의 글을 쓰고, 다시 이를 외국어로 번역하여 발간할 책은, 두고두고 교민들 스스로를 다지고 2세들을 교육하는 자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이 사회에 한국교민사회의 내적 정체성을 밝히면서, 혹시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다면 이를 재고하는 계기도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금 진행되는 전시는 중간전으로서,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JIKS)의 전시(6월 7일 개막)를 시작으로 무려 6곳을 옮기면서 치르는 릴레이전인데, 이에 대한 설명을 좀더 해 주십시오.
1월부터 받은 주문 작품이 100여 점을 넘겼어요. 《아름다운 축제》는 교민 모두가 함께 이루는 축제라고 밀어붙인 결과이긴 하지만, 애초에 기대한 것과는 훨씬 못 미치는 결과죠. 그러나 주문을 해 가신 분들은 한결같이 모두 좋아하시더라고요. 가능한 찾아가서 보임으로써 참여를 촉진하고, 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전시할 수가 없으니 미리미리 해소도 하는 등 다목적입니다. 이미 한국국제학교의 전시를 통해서는 우리 문화를 접할 기회가 드문 아이들에게 참 좋은 기회가 된 듯하여 보람이 있었고, 외국계 국제학교 2곳을 선택한 것은 일부 교포학생들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나라 출신 학생들에게 우리의 서예문화를 알리는 것이어서 씨앗을 뿌리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는 윤해중 주 인도네시아 한국대사

타국인데 작품 제작과 전시 진행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우선 저는 이번 행사를 통해 다작을 해야 합니다. 다작에 대한 평소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다작을 하면서 느낀 점은 정말 잘 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이 정해준 제재를 가지고 작품을 한다는 것이 여간 흥미롭지가 않아요. 기왕 정해진 기간이니 후회 없이 종이를 망쳐보고 싶습니다. 작가로서 제 생에 있어 분명한 한 페이지가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현재의 제 존재가치이니 모든 내용과 잘 어울리는 작품을 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이 행사가 끝나면 계획한 다음의 일들을 진행할까 합니다. 전시 진행은 언어소통의 문제라든가 표구의 문제, 가장 중요한 비용의 문제 등 부딪히게 되는 당연한 문제들이 많죠. 도와주시는 분들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들입니다.

어떠한 계기로 《아름다운 축제》를 열게 되었는지요.
이야기를 하자면 참 깁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주하면서 가졌던 기대치가 형편없이 무너진 상황에서 궁여지책이었던 셈이죠. ‘절망’은 제가 좋아하는 단어가 아니니만큼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 없었죠. 전문 작가로서 여기저기 정기, 부정기 칼럼과 작은 문화행사라도 의미를 찾고 강조하는 글들을 쉼 없이 발표하면서 제 역할을 찾던 중 《아름다운 축제》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예술가의 일이란 그것이 단순히 살기 위한 궁여지책이라 해도 어느 면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즉, 공리성을 내함하는 것이잖습니까? 다행히 제가 제출한 기획안을 이해해준 분들이 있어서 한인회나 대사관의 관심을 끌 수 있었고, 제가 원하는 대로 대사관이나 한인회가 주관처가 되어주지는 않았지만 후원을 얻을 수 있었지요. 즉 공공성을 띠면서 행사를 시작하고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작가 활동 외에도 대학의 강의, (주)서예로 운영, 『월간 까마』의 편집주간 등 모든 경험들이 절대적인 힘이 되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의 한인 사회에서도 사례가 없다고 하는 이번 축제는 재외 한인사회의 결속을 다지고, 정체성 찾기에 한몫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정체성 찾기를 강조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른 나라의 교민사회는 어떤 현상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곳은 이곳 교포사회다운 나름의 현상이 있더군요.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이고, 후진국이며, 따라서 여기에서 살고 있는 주 목적이 대부분 경제활동 등인 데서 생겨나는 특수성으로 한편 당연한 부분입니다만, 심리적 안정에 관한 현상입니다. 물론 일부의 경우지만 제법 오래 산 사람들까지 곧 떠날 사람처럼 마음가짐을 한다거나, 심지어는 한 구석에 늘 보따리를 싸놓고 산다는 말이 있으니까요. 문화라는 말 또는 정체성이란 말 자체가 자칫 호사스런 단어로나 취급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어느 곳에서나 심지어는 본국에서도 현실적으로 대두되는 현상이죠. 처음부터 예술을 부정적으로 보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벽을 아름답게 치장하거나 예술품을 소장하려는 여유는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지요. 돈을 벌면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더 나은 나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야 인지상정일 것이니 절대 탓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고 봐요. 또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네 정서에서 인도네시아에 산다는 사실 자체가 드러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부의 정서 또한 어찌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기왕 사는 것인데 하루를 살더라도 마음을 내려놓고 차분히 산다면 좋은 일 아니겠어요? 한편에서는 비교적 고른 학력 수준에 비해 보면 문화의 이해도가 더 높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선도하는 분들이 있으니 참 좋은 부분도 있습니다. 저도 작은 힘이나마 일조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이 행사는 이 사회에서 쉽게 마련되지 않을 것 같은 제 자리를 스스로 마련한다는 것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겠지요.


좋은 생각 / 소장인 Charly Ko
멋 / 예원아트스쿨 소장

‘가훈, 사훈, 좌우명, 상호, 공동체명’ 등을 서예작품으로 드러내면서 이를 정체성 찾기의 일환으로 승화시키고 있는데, 테마를 그렇게 정한 이유가 있으실 텐데요?
지금 이 행사가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어려움이 있다면 각자에게 평소에 다져온 확고한 지침이 없다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뭐 작품으로까지 해놓을 필요가 있느냐, 귀찮은 일이다 하는 인식입니다. 또 제가 제공한 제재가 다소 어렵거나 적합하지 않다는 부분은 접어두고라도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새롭고, 특별하며 아주 포괄적인 내용을 원하는데, 그런 포괄적인 뜻을 함축한 단어를 찾는 것이 쉽지 않지요. 그러다 보니 행사를 적극 광고한 지 6개월여가 지나도 아직도 참여를 망설이는 사람도 있고 포기한 분들도 있습니다. 최소한 이 행사를 통해 자기를 돌아보거나 미래를 생각하면서 그에 합당한 것을 생각해보는 고뇌의 시간이 엉뚱한 서예가에 의해 느닷없이 부여된 셈이죠. 이것 자체가 바로 정체성 찾기 아닌가요?


절개와 희망에 대해 / 소장인 양청길
하나님께 / 소장인 이호덕

《아름다운 축제》가 ‘교민을 위한, 교민에 의한, 교민들의 축제’를 표방하고 있더군요. 재 인니 교민들의 결속과 한국성에 대한 되새김과 찾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나아가 인니의 타 민족 사회에 확산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교민사회도 그렇거니와 외국인 사회의 문을 열기란 참 어렵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겉으로의 호응이야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작가의 현실을 지탱해주는 것과는 다르잖습니까? 어떡하든 살아내야 한다는 것은 본토의 사람들보다 이곳에 사는 제3국인들에게 더 절박하게 다가오는 것이 상식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술을 돌아볼 틈이 적다는 것도 이해를 합니다. 제가 좀 쉽게 생각하고 이주를 하긴 했지만, 처음 생각과 너무 달라서 한때는 참으로 막막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행사를 통한 확산문제는 빠르면 3년, 늦으면 5년 정도는 지난 다음에야 언급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야 그 말에 현실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4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주하고 나서 국내의 서예계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의 소식을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로 옮기고 나서의 활동을 좀 말씀해 주십시오.
별 다른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서예를 통해서 나의 삶을 투영해내고 있지요. 그런 점에서는 서울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다만 활동 영역과 만남의 대상을 넓히면서 언어를 해결하고, 제게 닥치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고충이 가중되어 있지요. 실제로 경험을 해보니 예술가가 해외에서 자녀를 교육시키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것을 절감합니다. 주재원이 아니면 해외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가 정말 어렵겠더군요. 그들이 부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참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해보고 싶은 일이 참 많기 때문이지요.


心好 / 소장인 신수창
한솔 / 레스토랑 한솔 소장

활발한 강의 활동과 글쓰기, 다양한 이벤트를 한국서단에 창출하면서 서예가로서 참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던 작가께서 모든 것을 접고 어느 날 갑자기 인도네시아행을 단행하자 일각에서는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있을 텐데, 무엇입니까?
국내에서의 조금은 다양했던 활동이 저를 해외로 눈을 돌리게 한 원인이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50살이라는 물리적 나이가 더 늦기 전에 뭔가를 더 확실히 느끼고 경험하도록 압박을 하기도 했고요. 40살에 목표로 세웠던 ‘저서 10권 출간’의 목표를 거의 이룬 것도, 그럼 다시 60세까지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목표에 대한 고뇌도, 좀더 폭 넓게 살기를 바라는 자식들에 대한 교육적 측면에서의 선도적 역할도 다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이번 행사가 마무리될 시점에서의 결실과 의미에 대해 미리 예상해 본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거시적으로 본다면 뭐 서예전도사 역할을 충실히 한 셈이 되지 않을까요? 한국서단에서 크게 격려라도 해주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어쨌든 《아름다운 축제》는 저의 작가적 사명감과 기질로 인해 마음껏 하나의 장을 펼치는 것입니다. 제 삶의 한 방편임을 감출 생각도 없지만, 공공성을 신념으로 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도 자신할 수 있습니다. 이 행사에서 혜택을 얻느냐 못 얻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고 수용능력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단언이야 할 수 없지만 노력한 만큼 성과는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작품세계를 다지는 일이면서도 모색과 실험의 좋은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고요. 상처뿐인 영광일 수도 있지만, 타국에서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이니만큼 여기저기 직접 부딪히면서 얻게 된 산 경험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이 모두가 오롯한 제 소득으로 남을 것입니다.


日日又日新 / K-TV 소장

Your faith has made it happen. / 소장인 배부일·손은희

한국을 떠나신 뒤 더러의 자리에서 지인들이 ‘신념이 참 강한 사람’이라고 평하던데, 그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군요.
저는 “혼자가라. 자득(自得)하라.”는 말을 숙명처럼 지니고 삽니다. 이는 예술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살아야 할 신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와 삶의 현장에서 좀더 큰 뜻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자기의 길을 깊이 궁구하여 자득하면 나와 다른 사람과 세상이 보임으로써 온전히 더불어 살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혼자가라. 자득(自得)하라.”는 다른 사람과 외떨어져 혼자서 살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아름다운 축제》를 시작할 수 있었겠지요.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농담 같지만 한국 사람들 사이에는 인니를 일컬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라는 말이 오갑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런 저런 생각이 있고 또 진행을 할 계획이지만, 실행과 성공 여부를 정말 예상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 계단씩 나아갈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런 저런 좋은 소식을 만들도록 노력을 할 것입니다.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격려를 주시기 바랍니다. 제 뒤에 든든한 한국서단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한타임즈 (2004년 6월 7일, 월요일)

작가께서는 그동안 한국 서단과 서예를 위해 각종 매체에 많은 글을 개제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한 발짝 멀리 있는데 한 말씀 해주시죠.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가 한국서단을 향해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일원으로서 느낌을 밝히는 것일 뿐이지요. 윤리성이 드러나지 않는 단순한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 느낌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써 스스로에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의미가 강하다는 점을 알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잡지를 통해 한국서단의 소식을 접하는 저로서는 여전히 늘 활기차서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덧붙인다면 저는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가 독립된 우주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서단의 일원으로서 하나의 서단을 이루되 각자가 우주관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자기 확신이 없는 붓질이 어느 누구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나, 전통과 역사에 일방적으로 편승하여 척하는 점, 솔직하지 못한 기행적 행동과 말은 똑 같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속된 것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오히려 화선지 위의 먹선처럼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선진국에선 미술학도들이 필수로 마케팅을 공부한다는 사실도 새겨보아야 할 부분이라 생각하구요. 저는 (주)서예로를 운영하면서부터 한국의 서예를 세계에 팔 수 있는 마케터를 찾았었는데,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와서도 즉시 찾은 것이 매니저였는데 결과적으로 지금은 포기한 상태예요. 따라서 자신을 자신보다 더 잘 드러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품은 물론 최대한 스스로를 다각적으로 다듬은 다음 마케터의 역할을 기대해야 한다는 것이죠. 작가란 곧 각자의 상품화가 목적인 부분도 있으니까요.
부족한 제 소식으로 인해 지면을 많이 할애해주어서 감사합니다. 한국의 서단에 날마다 좋은 일들이 많이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문의:001-62-21-725-7365 <인터뷰 : 이용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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