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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성(한국능률협회인니지사)   2004-09-08  
  [자카르타에 인재 손인식 작가가 산다]
자카르타에 인재 손인식 작가가 산다
박 규 성 (한국능률협회 인니 지사)

서예가로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재 손인식 씨가 한국과 인도네시아 수교 31주년과 서울과 자카르타 자매결연 20주년을 기념한 「한국미술전」에 초대전을 개최하였다. 8월 18일부터 21일까지 자카르타의 샹그릴라호텔, 23일부터 29일까지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서 연이어 열린 이번 전시회는, 현재 대형전시이벤트 ≪아름다운 축제≫(본지 7월호 참조)가 치러지고 있는 가운데 열려 의미를 더욱 깊게 하였다. 이에 좀더 생생하게 전시 현장을 소개하고자 자카르타에서 펼쳐지는 한국문화예술에 깊은 관심과 날카로운 안목을 지닌 박규성 씨의 전시평 원고를 수록한다. <편집자 주>


들어가며
모진 과정을 싫어하지 않는 이가 자카르타에 산다. 서예가 인재 손인식 작가이다. 그저 열심이다, 성실하다는 말로 그를 말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필자가 그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오직 자기의 예술혼을 진정으로 소진하는 ‘치열함’이다. 그 치열함이 그의 모든 삶과 예술에 아우라를 이루고 있다. 그가 붓 한 자루 들고 자카르타에 온 지 벌써 1년 4개월여, 아직도 시련기이지만 지금쯤은 그의 인내심을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그가 그동안 온몸으로 맞았을 그 맵짠 순간순간들을 필자가 넉넉히 짐작하거니와 도대체 그것을 당당히 극복해가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할 따름인 것이다.
필자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떠나서 적잖은 시간들을 예술을 기웃거리고 예술가들을 가까이 하면서 살아왔다. 앞으로도 예술과 그 정신을 흠모하며 살 것이다. 따라서 누구와도 장르를 떠나 예술담론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타국에서 인재 손인식 작가와 같은 프로와의 만남은 처음부터가 호기심 그 이상이었다는 의미이다. 다만 그가 활동하기에는 기반이 다소 열악한 곳임을 이미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어떻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가 의문점이자 걱정거리였다. 자의든 타의든 예술로부터 저만치 동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해외 교포사회의 현실이고, 외국인들에게 붓과 먹으로 이루어지는 한국의 예술을 잘 이해해주기 기대할 수도 없으니, 그의 출현은 처음부터 필자를 비롯해 그를 만나게 된 모든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이방인을 보는 생경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어느 순간부터 인재 손인식 작가를 믿기 시작했다. 바로 그의 저서 9권을 모두 다 읽고난 다음부터다. 환경과 상관없이 찰나도 게을리 않고 갖가지 시도를 하면서 앞으로 짓쳐나가는 그의 오늘을 조금은 예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 이곳 “자카르타에서 작품 활동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지금은 작은 씨앗을 힘겹게 뿌리고 있지만, 그 싹을 가꾸면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옹골진 꿈을 꾸면서 시간 시간을 온전히 태우는 데서 나오는, 희망과 자신감의 표출일 것이다. 필자는 인재 손인식 작가를 가까이 보면서 짧은 기간 동안에 그만큼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만큼 많은 일을 하면서 그만큼 많은 결과를 만들어 낸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한 적이 많다.



천ㆍ지ㆍ인(天ㆍ地ㆍ人), 62×62cm

「한국 미술전시회」
「한국 미술전시회」는, 한·인니 수교 31주년과 서울·자카르타 자매도시 결연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대사관이 마련한 행사이다. 한국에서 김소선 작가가 도자기에 민화를 재현한 작품과 한국의 풍경을 그린 서양화로 초대되었고, 한복과 한국의 수석도 전시되었다. 이 전시에 현지 작가로서 초대된 인재 손인식 작가는 한글(훈민정음)을 테마로 한 작품들 36점을 출품했다.
그는 “국가 간의 수교를 기념하고 도시 간의 결연을 기념하면서 한국의 문화를 알리자는 전시회에 민족의 언어 한글을 테마로 작품을 하는 것은 어쩌면 상식 정도의 범주”임을 말하면서도 “마치 예정했던 것처럼 한글을 표현 주제로 선택을 했다.”고 한다. “그간 한글을 소재로 작품을 할 때마다, 창제의 철학을 곁들인 인상주의적 표현 방법이 없을까 하고 많은 고민”을 한 그로서는 “밀쳐두었던 숙제를 명분을 지니고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장”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한 한글이 “창제의 철학적 배경과 자연 현상을 본뜬 가운데 매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원리가 적용된 것 등은 인상주의적 표현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라고 말하고 “사람의 소리나 글자를 단순한 물질적인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이것을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원리가 있음을 깨달음은, 이미 예술이 지향해야 할 본질과 표현의 무한성을 암시하고 있다.”라고 결론 내리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그가 이번 전시회의 테마에 얼마나 진지하게 골몰했는가를 가늠한다.
아울러 그는 “이번 초대전 작품에 주로 사용한 종이가 100년 이상을 묵은 조선의 한지”라고 말하고 “전통한지가 현대에 와서 재생산이 거의 불가능함으로, 이를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초대전에 한글과 함께 알리자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밝힌 부분이나 “한글의 제자 원리와 이면의 철학을 요약한 「한글의 개요」와 조선의 「한지의 개요」를 간추려 번역 수록함으로써 민족문화의 특질을 알리는 데 다소나마 기여하고자 하였다. 이에 더하여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와 이면의 철학을 재해석하는가 하면 각 작품의 특징에 따라 창작 단상을 밝혀 감상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는 부분에서는 그가 민족문화를 알리자는 이번 전시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가 작가적 사명감에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읽어낼 수가 있다.


천복(天福) Ⅰ, 62×62cm

열 번째의 저서 『사랑의 훈민정음』
거칠게 말해서, 대신 갈 수 없는 길이 사람의 삶이며 대신 가줄 사람도 없는 것이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진리다. 자기의 몫은 죽으나 사나 자기가 감당 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성이 바로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나 가지 못하는 예술의 길을 가는 그가 자기의 길을 알고 힘차게 가는 것은 참 보기가 좋다. 예술이 욕심을 버리는 일이라고 한다면, 삶이란 어쩔 수없이 늘 욕심을 잉태하는 것이기에 양립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는 서예를 통하여 늘 아름다움의 극치를 좇아간다. 아름다움을 좇아 가는 일은 대부분 비현실적일 수 있음에도 예술과 삶 사이의 은밀한 파장, 몸과 마음의 섬세한 결을 관찰하고 조형해내는 솜씨 있는 작가이다. 이는 그가 지극히 프로정신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1백년이 걸려서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그의 예술 투혼이 가히 지선(至善)인 것이다.
그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발간한 작품집 『사랑의 훈민정음』에는 「인재 손인식 운필집 제10집」이라는 부재가 붙어 있다. 그 책의 후기에 “사십대에 들어서면서 나이 오십까지 저서 열 권 발간하겠다던 계획”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으니 그 계획의 실현인 셈이다. 이십 년 계획의 실현이 ‘나이 육십까지의 해외 경험’이라는 향후 십년 계획과의 교차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국가의 초대전이란 전시가 지니는 의미에다가 40대를 마감하면서 실현하는 10년 계획의 마무리, 이 모두가 향후 10년의 계획으로 시작한 해외생활의 첫 들머리와 교차되는 시점 등을 헤아리면서 필자는 그 의미를 다시 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개막식장에서 기념촬영

O, 끝과 끝을 이으면 원이 되고, 50×62cm
새벽 빛, 45×65cm

관계와 소통의 매개로서의 예술
이 글의 시작에서 밝혔듯이 필자는 적잖은 시간을 예술의 모든 것을 흠모하며 살아왔다. 다시 말해 사람의 삶과 사업도 예술이라는 생각을 그쳐 본적이 없다. 여기에 예술이란 세상의 고통을 자신이 앓고자 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타인의 상처를 위로하고 껴안거나 시대의 아픔을 대변 하려는 우주적 풍모를 통하여 자신의 상처마저 치유해 나가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필자의 사고 영역이 존재한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출발 당시부터 영혼의 구원이라는 진지하고 진실한 목표를 가지지 않으면 힘을 잃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소설가가 독자를 선택하려 하거나 연극배우가 관객을 선별하려 한다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 되겠는가. 주정꾼도 시를 논하고 오페라를 감상할 수도 있으며, 창녀가 셰익스피어 연극을 감상해도 뭐랄 수 없다. 총체적으로 예술가란 늘 자아를 새롭게 빚어 사람 사는 사회에 드러냄으로써 오직 관계와 소통의 매개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른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랄까 뭐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살벌하고 난잡한 사회라 하더라도, 갈등을 스스로 극복하면서 자기의 길을 가는 인재 손인식 작가이기를 간절히 비는 우정도 들어있다. 이런 결론은 그와 함께 하는 이런 저런 자리에서 더욱 굳어진 것이다. 우리들의 담론은 대부분 예술과 인생인데 그의 열변을 들으면 매우 재미있다. 자기 예술과 자기 실천에 대한 확신은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전이(轉移)시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 그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의 행동을 보면 실천가임을 알 수가 있다. 시도가 많으니 더러 실패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실패들로 인해 결코 낙망하지 않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많은 실패들을 딛고 성공의 열매가 맺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실패는 마치 작품을 완성 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에스키스나 습작처럼 오히려 있어야 할 것으로서 아름답기조차 하다는 것이 필자의 느낌이다.
그는 놀기도 잘하는 사람이다. 더러 흥이 나면 즉석에서 뽑아내는 창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판소리! 맺힌 한을 푸는 절치부심이요 해학과 풍자가 단단히 한몫을 하는 우리네 소리가 아니던가. 그래서 그와 함께하는 자리는 늘 흥분 또는 신명이어서 자카르타에서 함께 사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며 보람이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일진대, 인재 손인식 작가를 통하여 인도네시아에서의 나의 삶의 질이 어찌 높아지지 않겠는가.


Suara Pembaruan, 2004. 8. 27 / The Jakarta post, 2004. 8. 19

마치며
바른 말과 글이 문화를 만들고 발전시키는 가장 원초적 요소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말은 곧 우리의 정신이요, 얼이요, 정서의 뿌리가 되는 우리 문화의 핵이 아니던가. 말이 문화의 뿌리가 되는 요소라면 말을 지키는 글자는 그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를 한민족으로 있게 하고 많은 문화를 향유하게 한다. 인재 손인식 작가의 한글(훈민정음)을 테마로 한 작품과 그 전시가 국가간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한 미술전에 출품된 것은 나름대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인도네시아에 있는 많은 작가들에게 고무적인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인니 문화관광부 장관의 축사가 의미하듯 인도네시아 사회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사랑의 훈민정음이, 우리의 독특한 문화를 이들에게 선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그가 작가로서 세계를 향해 한 발 내딛음에 대한 선도일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개막행사에는 주 인니 한국대사와 인니 문화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10여 개국의 대사 등 많은 사람들이 모였었다. 이미 텔레비전 2곳에서 보도를 하였으며 여러 곳의 신문에서 인터뷰를 통해 전시회를 알렸다. 금번 전시회를 통하여 예술적 전율과 감동을 많은 사람들이 체험하였으리라 믿는다. 아울러 좋은 작품전이란 그것이 관람자에게 감동으로 전이되고 증폭되어, 마침내 나누어 즐기는 순환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시대에 더 이상 예술가가 가난해야 할 이유도 없거니와 이 시대를 사는 진정한 예술가가 가난하다면 어쨌든 이 사회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또한 사회가 이 점을 헤아리는 전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불광불급(不狂不及)! 그는 미치지 않으면 다다르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해주었다. 필자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부디 이광치광(以狂治狂)! 오직 미친 것으로써 미침을 다스려서 보통의 사람들에게 좀더 다른 깨우침을 얻게 해주기를 인재 손인식 작가에게 기대한다.



글쓴이 박규성은 한국능률협회 인니 지사장으로, 자카르트에 8년째 거주하고 있으며, 예술 전반에 걸쳐 해박할 뿐만 아니라 예술가보다 더 예술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예술에 깊은 관심과 뛰어난 식견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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